[이렇게 골랐습니다]마에스트로 정명훈, 그의 삶과 요리

  • 입력 2003년 8월 29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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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내부는 내게 외국어였습니다.” 어느 날 불시에 동맥류의 공격을 받고 죽음 직전에까지 내몰렸던 프랑스 여성소설가 파스칼 로즈. 의사들이 그녀의 몸을 헤집고 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무력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자신의 책 ‘로즈의 편지’(B7)에서 고백합니다.

가족들과 한 끼의 식사를 맛나게 나누는 것, 내 두 발로 대지를 딛는 것….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그것들을 놓치기 전까지는 절대 그 소중함을 알 수 없다는 소박한 진리를 잊지 않고 살기는 힘듭니다. 로즈의 말처럼 늘 ‘눈을 가리고’ 살아가게 되지요.

그런 점에서 마에스트로 정명훈은 교향악이 아니라 삶의 마에스트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아들과 장차 맞을 세 며느리까지 포함해 여덟 사람을 위한 저녁식사 ‘디너 포 8’(B3)을 차릴 날을 꿈꾸며 그는 매운탕을 끓이고 칙피스프를 만듭니다. 그의 지휘법은 금방 배우기 어렵다 해도 요리법은 쉽게 흉내낼 수도 있을 법합니다.

삶이 달라지는 첫걸음은 예전 삶과 단절하는 거대한 이벤트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천천히 달려라’(B6)의 저자인 러너 존 빙햄은 “달리기를 배우기 시작할 때, 때로는 걸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결승점에 도달한 시간을 기록하기보다는 어디를 달렸느냐는 궤적을 적는 것이 계속 달리게 하는 힘이라고 말입니다.

가을입니다. 오규원 시인이 그랬던가요.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고….

책의 향기팀 b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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