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은근과 끈기 어디 가고

  • 입력 2003년 8월 19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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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학자 조윤제 선생은 한국인의 특성을 ‘은근과 끈기’로 풀어냈다. “우리 민족은 아시아 대륙의 동북지방, 산 많고 들 적은 조그마한 반도에 자리 잡아 끊임없는 대륙 민족의 중압을 받아 가면서 살아 나와서 물질적 생활은 유족하지를 못하였고, 정신적 생활은 명랑하지를 못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은근하고 끈기 있는 문학 예술 내지는 생활을 형성하여 왔다. 그것의 호불호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과거의 전통이었고, 또 반운명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살아 나왔고, 그렇게 살아 있고, 또 앞으로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은근은 한국의 미요, 끈기는 한국의 힘이다.”

춘향전과 정몽주의 단심가를 예로 들어 가며 논리를 전개해 가는 선생의 글을 읽다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탁월한 진단이 아닐 수 없다. 하긴 곰이 마늘과 쑥을 먹는 처절한 노력 끝에 웅녀로 변신했다는 단군신화에도 우리 민족의 특성인 은근과 끈기가 담겨 있다. 발효식품인 고추장 된장 간장에서, 몇 달 동안 줄곧 왕성하게 피는 나라꽃 무궁화에서 은근과 끈기를 찾는 사람들도 있다.

남을 지배하고 역사를 주도하는 적극적인 품성은 아니지만 은근과 끈기는 우리의 근현대사를 자랑스럽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우리뿐만 아니라 남들의 평가가 그러했다. 세계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우리를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며 격려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을 ‘아시아의 4룡’ 가운데 하나라고 치켜세웠다. 프랑스인들이 사용한 ‘떠오르는 태양(soleil levant)’이라는 표현도 기분 좋은 찬사였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필요하면 희생을 하는 민족성이 아니었다면 그런 눈부신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 피땀 흘려 일한 우리의 부모와 선배들은 은근과 끈기의 화신들이다. 독재정권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민주화를 끌어낸 힘도 은근과 끈기에서 나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집단이기주의가 넘치고 눈앞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조급증 환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우리가 은근과 끈기의 슬기를 발휘한 조상들과 같은 품성을 지닌 민족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오늘은 누가 누구를 비난하고 누가 누구와 갈라설 것인가. 참는 사람이 없으니 남을 향해 자제하라고, 국가를 생각하라고, 미래를 바라보라고 하기도 어렵다.

우리는 어느덧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어 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한 칼럼은 언론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노무현 대통령에게 “영국의 토니 블레어 정부를 배우라”며 비아냥조의 충고를 했다. 북한이 유니버시아드를 볼모삼아 서울 거리에서 벌어진 행사를 겨냥해 사죄를 요구한 것도 ‘흔들리는 집안’ 탓이 아닌가. 6자회담이 열리지만 자칫하면 우리의 운명을 놓고 남들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자존심 상하는 회동이 될 수도 있다.

은근과 끈기의 위기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만들어 가고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색의 계절 가을을 맞아 우리의 품성을 되찾자는 거국적 다짐을 하는 것은 어떨까. 이대로 가면 우리는 부끄러운 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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