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상병 특검 거부권’ 대놓고 말 못하는 대통령실의 고심 셋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5월 3일 16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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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번째 거부권 땐 ‘불통 논란’ 재점화
특검 찬성 여론 67%… ‘與 재표결 이탈표’도 변수

“(윤석열) 대통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홍철호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홍철호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
홍철호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은 3일 “(채 상병 특검법은) 사법절차에 상당히 어긋나는 입법폭거”라며 이같이 성토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전날 “안타까운 죽음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성토한 데 이어 국회 해병대전우회 회장 출신 정무수석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위한 명분 쌓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나왔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거부권’이라는 단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현 정부 출범 후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이미 9건에 이르고 채 상병 특검에 찬성하는 여론도 높은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거부권 행사로 야권의 불통과 오만 프레임 공세가 거세져 국정 지지율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도 있는 만큼 고심도 깊어지는 모양새다.

● 尹, 참모들에 “거부권 행사 않는 건 직무유기”

윤 대통령은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뒤 참모들에게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은 대통령의 직무유기이자 나쁜 선례를 남기는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홍 수석은 “대통령이 받아들이겠다고 말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사법절차를 종료한 사안”이라며 “채 상병 건은 좀 다르다. 경찰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수사 중인 사건”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더군다나 이 사건 수사권이 군에 없는 만큼 기관 간 업무를 조정하기 위한 대통령실의 연락은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홍 수석은 “군내 사고를 군인이 직접 수사하는 것을 믿지 못하겠으니 경찰이 수사하도록 하자는 게 (개정 군사법원법의) 법 취지”라며 “(해병대 수사단이) 수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을 향해선 “공수처도 못 믿겠다는 것 아니냐. (아니면) 이런 사안이 생기면 특검으로 다 가자고 법을 아예 개정하든지”라며 “사법절차가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덜커덕 (특검을) 받아들일 순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민주당의 특검법 강행을 성토하면서도 ‘거부권’ 행사라는 표현을 직접적으론 언급하지 않았다. 총선 후 거대 야당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된 입법 환경이 녹록지 않은 데다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다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기존 9차례 거부권 행사에 더해 찬성 여론이 높은 채상병 특검법을 거부할 경우 10번째 거부권 행사가 되며 ‘불통과 오만’ 논란이 재점화할 수 있다. 국정 지지율에 악재로 작용할 경우 20% 초반대에 머무는 국정 지지율에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홍 수석이 이날 “그런 (거부권 행사) 건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고심이 깔려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재적 296인, 재석 168인, 찬성 168인, 반대 0인, 기권 0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4.5.2/뉴스1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4회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 속에 재적 296인, 재석 168인, 찬성 168인, 반대 0인, 기권 0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2024.5.2/뉴스1
국가를 위해 군에 복무하다 꽃다운 나이에 숨진 젊은 병사의 사망 경위를 가려내려는 수사를 둘러싼 외압 유무를 규명하고, 관련자 형사책임 범위를 특검으로 가려내자는 특검 찬성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시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 따르면 특검법에 찬성 응답이 67%였고, 반대 응답이 19%였다. (95% 신뢰수준에서 표본오차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에 더해 국정 과제 이행을 위해선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적인데 거부권 행사로 정국이 급랭해 국정 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거부권 행사 시 재표결에서 여당이 예전과 같은 결집력을 보이며 저지선을 형성해 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점도 변수인 가운데 이탈표가 많아질 경우 대통령실의 국정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 민주 “거부권 행사 시 22대 개원 즉시 재추진”

이날 민주당은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며 새로 출범할 22대 국회에서도 강공을 예고했다. <이날 선출된 박찬대 신임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22대 국회 개원 즉시 재추진하겠다며 채 상병 특검법이 21대 국회에서 폐기되더라도 다시 추진할 것임을 예고했다. 이날로 임기를 마친 홍익표 원내대표도 “대통령실이 이(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민주당의 강력한 저항은 물론이고 더 큰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하게 경고한다”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이상헌 기자 dapaper@donga.com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채 상병 특검법#대통령 거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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