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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12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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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는 얽히고설킨 실타래나 마찬가지다. 오랜 내전, 주변국과의 복잡한 갈등 등 고려해야 할 요인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 자신 있게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라고 판단하기가 어렵다. 권력을 승계한 모제스 블라의 이력만 봐도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는 테일러와 함께 반란을 일으킨 반군 출신이다. 라이베리아에 곧 평화가 올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다. 미국을 향해 “죽어가는 라이베리아를 구원해 달라”고 호소한 신임 대통령 블라의 말 속에 테일러의 퇴진에도 불구하고 실타래를 쉽게 풀 수 없는 라이베리아의 고민이 담겨 있다.
▷라이베리아 사태에서 국제사회가 대량살육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테일러가 89년 반란을 일으켜 7년간 내전을 벌이는 동안 약 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금도 테일러 정권에 반발해 무장투쟁에 나선 반군이 국토의 5분의 4를 장악하고 있다. 2개월 전 반군이 수도를 포위한 뒤 전투가 격화돼 최근에만 약 2000명의 민간인이 학살됐다. 주변국 지도자들이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한쪽 당사자인 테일러에게 망명지를 제공하고 융숭한 대접을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사연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든 학살을 멈춰야 하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미국은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미국과 라이베리아의 인연은 깊다. 미국에서 귀환한 노예들이 세운 아프리카 최초의 공화국이 라이베리아다. 테일러는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는 인연까지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입을 머뭇거리고 있다.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참을 수 없다며 이라크를 공격한 나라가 미국이다. 대량살상무기 확산저지가 대량학살 중단보다 중요하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파견한 불과 700명의 평화유지군으로는 라이베리아 국민들을 보호하기 어렵다. 미국이 곧 라이베리아 주변 해역에 머물고 있는 3000명의 미군에게 상륙명령을 내리기를 바란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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