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셰리의 노래

  • 입력 2003년 8월 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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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부인 셰리 여사가 남편 대신 부른 노래가 유럽의 댄스클럽에서 인기란다. 지난달 총리 부부가 중국 칭화대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학생들과의 대화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거짓말하는 게 아니냐, 왜 대영박물관엔 중국 문화재가 그리 많으냐 등등 학생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졌다.

▷질문시간이 끝나갈 무렵 난데없이 한 학생이 노래 한 곡 하라고 외쳤다. 당황한 블레어 총리가 “이건 각본에 없는 건데…” 하며 아내를 찾았다. 셰리 여사는 멋진 구원투수였다. “비틀스 노래를 부르라네요. 제가 해도 돼요?” 그때 부른 비틀스의 ‘내가 64세일 때’가 댄스풍으로 리믹스되어 지금 유럽 휴양지를 달구고 있다고 외신이 전한다. 비록 BBC 인터넷판은 이 같은 소식을 ‘입증하기 어렵다’고 보도했지만.

▷셰리 여사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와 종종 비교된다. 변호사 출신에 남편보다 똑똑하다는 평을 듣는 점도 비슷하다. 칭화대에선 “아내가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언짢지 않으냐”는 질문도 나왔다. “아내는 나보다 똑똑하다”는 것이 블레어 총리의 대답. 실제로 런던경제대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변호사 시험에 수석 합격한 셰리 여사는 총리 연봉 17만5000파운드(약 3억4000만원)보다 훨씬 많은 25만파운드(약 4억8700만원) 정도를 번다고 알려져 있다. 힐러리 여사가 화이트게이트에 연루됐듯, 셰리 여사는 아파트를 싸게 사도록 도와 준 사기 전과자의 재판에 간섭하려 했다는 ‘셰리게이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힐러리 여사처럼 자서전도 낼 예정이다.

▷정치문제에 대해 말이 많다고 해서 ‘레이디 맥베스’ 소리도 들었지만 셰리 여사는 블레어 총리의 인생 고비마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블레어 총리가 노동당에 입문한 것도 열성 노동당원인 셰리 여사를 감복시키기 위해서였다. 1980년 결혼 때는 “먼저 의회에 진출한 사람이 정상을 목표로 정치하고, 다른 사람은 변호사로 돈 벌면서 상대를 돕자”는 약속도 했다. 83년 각기 다른 지역에서 하원의원에 출마해 남편이 당선됐고 아내는 떨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2000년 블레어 총리의 지지도가 추락했을 때 셰리 여사는 ‘절묘하게’ 네 번째 아기를 낳아 남편의 이미지를 올려놓기도 했다. 가정과 가족을 소중히 하는 총리를 미워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엔 셰리 여사의 노래가 남편을 구해냈다. 우리나라의 퍼스트레이디는 어떤 식으로 남편의 정치적 난국 극복을 도울지 궁금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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