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71…아메 아메 후레 후레(47)

  • 입력 2003년 7월 18일 18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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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어디에요?”

“이제 곧 웅악성이다.”

“네? 어떤 역들 지나왔는데요?”

“요양, 안산(鞍山), 탕강자(湯崗子), 해성(海城), 대석교(大石橋).”

“얼마나 더 가야 하는데요?”

“웅악성, 와방점(瓦房店), 보란점(普蘭店), 금주(金州), 사하구(沙河口), 대련”

“그럼 여섯 역만 가면 종점이네요.”

“곤하게 잘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은 잘 먹었으니까, 점심은 안 먹은 사람도 많았다. 저녁은 웅악성 명물인 초밥말이를 먹자. 박고지에 만 것 하고 유부 초밥하고.”

“대련에는 몇 시에 도착하는데요?”

“19시45분이다.”

“차장처럼 잘 알고 있네요.”

“지난 1년 동안 6번이나 탔으니까.”

“다들 하카다 군복공장으로 갔나요?”

“그런 건 아니지…오사카에 있는 식품공장에도 가고, 마네 기계공장,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다음 모집은 어느 공장인데요?”

“…글쎄다. 우린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참, 식당차가 있는 것을 깜박했군.”

“식당차….”

“먹어보고 싶겠지?”

사냥모 쓴 남자는 일어나,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경성에서 합류한 청년에게 말했다.

“이봐, 식당차에 가세.”

“식당차?”

“기분 전환이야.”

“자 식당차에 저녁 먹으러 가자.” 청년이 조선말로 말하자, 여자들은 치맛자락을 들어올리며 일어섰다.

“식당차는 5호차니까 조심해서 가라, 흔들리니까 말이야, 하하하하.”

조선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발음이 정확했다. 어쩌면 조선사람일지도 모르지. 소녀는 피부는 하얀데 껍질 벗긴 감자처럼 우둘투둘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물어볼까? 그 순간 동그란 안경을 낀 조그만 눈과 눈이 마주쳤다. 소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슬며시 눈을 내리깔았다. 일본사람만이 어디 사람이냐고 물을 수 있다, 우리는 늘 대답만 할 뿐. 그런데 뭐지, 저 사람의 눈빛은 왠지 흉악하게 느껴진다, 환한 웃음이 번져 있는 얼굴에 연필심 같은 눈이 꽂혀 있다…. 열차가 덜컹 흔들리자 여자들은 저고리 깃 밖으로 나와 있는 가느다란 목덜미에 힘을 주고 조심조심 통로를 지나갔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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