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선자금 ‘족쇄’ 지금 풀고 가야

  • 입력 2003년 7월 13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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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대선자금 200억원 모금’ 발언 파문과 관련해 청와대가 당정분리를 내세워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고 밝힌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 단순히 대선자금을 왜 모았고 어디에 썼느냐는 점만 생각해도 그런 얘기는 하지 못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의 대선후보였을 때 일어난 일인데도 당정분리 운운하는 것 역시 비논리적이다. 그처럼 편의적인 당정분리라면 원칙이라고도 할 수가 없다.

청와대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거나 회피하는 게 아니냐는 느낌이 든다. 정치권 또한 내심 움츠리는 분위기이고 검찰도 구체적 혐의가 있어야 수사할 수 있다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본다. 대선자금 의혹은 역대 대선 때마다 불거졌지만 엄청난 파괴력을 의식해 누구도 그 전모를 드러내거나 실체를 규명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정치권의 가장 은밀한 치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불거진 대선자금 의혹을 안은 채 노무현 정부가 순항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 의혹은 4년7개월여의 잔여임기뿐만 아니라 임기종료 후까지도 혹처럼 따라다닐 가능성이 있다. 97년 대선 때 한나라당이 국세청을 동원해 대선자금을 모금했다고 하는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은 아직도 재판이 진행 중이지 않은가.

청와대나 정치권은 지금 대선자금 족쇄를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당사자들의 진솔한 고백과 사죄가 선행돼야 한다. 그 다음에 국민의 판단을 구하고 제도개선 방안을 강구하는 게 올바른 순서다. 그동안 국민의 끊임없는 정치개혁 요구에도 불구하고 딴전을 피우곤 했던 정치권이 이제 와서 지킬 수 없는 비현실적인 정치자금제도를 탓하면서 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면 더 큰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가 정치개혁의 핵심인 만큼 정치권은 이번 사태를 정치개혁의 전기로 삼아야 한다. 물론 노 대통령이 그 선봉에 서야 한다. 대통령의 결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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