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뒤풀이

  • 입력 2003년 5월 23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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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풀이는 민속문화에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농악에서는 한바탕 공연이 끝난 뒤 놀이패와 구경꾼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막걸리를 마시는 행사를 의미한다. 민속놀이에서는 보통 앞풀이 본풀이 뒤풀이가 있다. 앞풀이가 흥을 돋우는 마당이고 본풀이가 중심이 되는 마당이라면 뒤풀이는 마무리 의식이다. 판소리에서도 맨 끝부분을 뒤풀이라고 한다. ‘흥부가’의 ‘뒤풀이’는 놀부가 죄를 뉘우치고 흥부와 화목하게 잘 사는 내용이다. 황해도 강령탈춤에서는 단옷날 공연을 한 뒤 10일 뒤에 다시 모여 공연을 하고 나서 탈을 태우는 행사를 뒤풀이라고 했다.

▷민속에서 굿의 의미는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된 기능이 있다. 굿은 맺힌 것을 풀어주는 의식이다. 사회과학적 해석을 빌리면 맺힌 것은 구조적 모순이라고 할 수 있고 푸는 것은 해결을 의미한다. 질병을 치료하고 가족의 갈등을 풀어주고 마을과 나라의 재앙을 막기 위한 염원이 굿이라는 의식으로 표현된다. 모든 굿은 뒤풀이 굿을 벌이고 나서 끝이 난다. 전쟁과 가난과 한이 역사에서 중첩되다보니 풀어야 할 매듭도 많았을 것이고 푸는 것 중에서도 마지막 뒤풀이가 좋아야 신명이 난 기분을 다음 날 생산으로 연장할 수 있다.

▷언어의 조련사 미당 서정주의 시 중 ‘행진곡’이라는 시가 뒤풀이 기분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빠알간 불 사르고/재를 남기고//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결국은 모두들 조금씩 취해가지고/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조상들은 잔치라는 본풀이가 끝나면 뒤풀이를 하러 갈 호프집이나 룸살롱도 없었다. 그저 한바탕 어울려 춤추다가 국밥을 마시고 포장을 걷고 주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는 것이 옛 시절 뒤풀이였다.

▷노무현 대통령과 3당 대표가 만나서 국정을 논의하고 나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의 제의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자민련 김종필 총재가 강남 룸살롱으로 가 뒤풀이를 한 것이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세 대표 모두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청와대를 나와 허허한 기분과 조금 모자란 알코올 기를 보충하러 간 것까지는 좋았으나 민생이 어려운 시절에 너무 호사스러운 집에 갔던 것 같다. 세 대표는 “옛날에는 정치가 낭만이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각박하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풀 때는 풀자”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본풀이가 허허로우면 독한 술이 오고가는 뒤풀이가 길어지는 법이다. 결국은 모두들 조금씩 취해가지고 돌아갔겠지만 뒤풀이의 뒤끝이 찝찝하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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