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아름다운 의사 삭스'

  • 입력 2003년 5월 9일 17시 40분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헌신적인 의사 패치(로빈 윌리엄스 분)는 인간에 대한 사랑 없는 의술에 반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브뤼노 삭스 역시 인간애와 환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의사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영화 ‘패치 아담스’에서 헌신적인 의사 패치(로빈 윌리엄스 분)는 인간에 대한 사랑 없는 의술에 반발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브뤼노 삭스 역시 인간애와 환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의사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아름다운 의사 삭스/마르탱 뱅클레르 지음 윤정임 옮김/640쪽 9800원 열린책들

“의사란 타인을 돕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까. 언제부터 의사가 외경스러운 존재가 되었죠? 박사님은 신발 바닥까지 참 멋지네요. 선생님 방귀는 냄새도 참 좋아요. … 언제부터 의사라는 것이 환자들을 치료하는 친구에서 이렇게 변질됐죠?” (영화 ‘패치 아담스’)

프랑스 작가 마르탱 뱅클레르가 창조해 낸 의사 브뤼노 삭스가 ‘패치 아담스’의 대사를 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고통 받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삭스의 손 역시 환자에게 냉담한, 기계적으로 의술을 행하는, 권위적인 의사에게 던지는 경고인 까닭이다.

작은 마을에 개인병원을 연 삭스는 여느 의사와는 좀 다르다.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에게 때로 사사롭게 느껴지는 질문도 하고 늘 비슷비슷한 그들의 주변 얘기에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인다. 환자들은 그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 놓지만 이런 그를 동료 의사들은 ‘편협하고 극도로 도덕적이고 조금 멍청한 작자’로 부르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주인공 의사 삭스는 소설 속에서 2인칭인 ‘너’로 지칭된다.

‘너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가방을 열어 처방전, 의료보험 용지 묶음을 꺼내 플라스틱 대야 옆의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 너는 테이블 밑에서 작은 발 받침대를 끌어당겨 그 위에 내 발목을 얹는다.’ (데투슈 부인)

그의 환자와 비서 이웃 친구 동료 등이 각각 화자로 삭스에 대해 진술하는 것이다. 작가가 채택한 이런 방식은 독자를 삭스의 병원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삭스가 어떻게 환자를 맞고, 진료기록을 작성하며 진찰하는지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이야기 속에 몰입하면서 ‘나’는 의사를 찾아 가는 우리가, ‘너’는 우리 앞의 의사가 된다.

각자의 눈에 비친 삭스의 모습은 하나의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112장(章)으로 잘게 나눠진 부분들은 처음에 무슨 이야기인가 싶다가도 책장이 넘어가면서 다른 부분들과 맞물려 어느 순간 무릎을 치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 이상적인 의사의 삶을 넘어선다. 삭스의 삶을 좇는 사이사이 의료 제도와 의대생들에 대한 교육 방식, 권위적인 의사의 태도에 대한 비판이 날카롭다. 또 30대 중반이 다 되도록 독신으로 생활해 온 삭스와 그가 임신중절수술을 한 폴린 카세르의 사랑, 투병 중인 친구와의 관계 등 생사(生死)와 희로애락이 헐거운 듯 조밀하게 짜여져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성찰로 독자를 이끈다.

실제 지방소도시에서 의사로 일한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삶을 아프게 하는 것들의 인과관계를 명의의 솜씨로 펼쳐 보이고 있다’(리베라시옹),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면밀하게 관찰해 온 사람만이 보여 줄 수 있는 통찰’(뉴잉글랜드 의학 신문)이라는 평을 받았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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