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07…명멸(明滅)(13)

  • 입력 2003년 5월 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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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병동의 커다란 유리창으로 6월 오후의 나른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병실은 고인 햇살 속에 고요한데 내 발소리만 터벅터벅 울렸다 717호 구니모토 신태 면회사절 마음의 준비가 될 때까지 문밖에 서 있었다 손잡이로 손을 뻗으려는데 안에서 아내가 나와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대합실 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아들과 단둘이서 만나라는 뜻이리라 나는 입술 양끝을 치켜 올리고 미소를 보이려고 애쓰면서 침대로 다가갔다 콧구멍에 꽂혀 있는 산소호흡기 주삿바늘 자국으로 시퍼렇게 된 팔, 살이 쏙 빠진 볼, 유난히 커 보이는 두 눈과 두 귀, 뻘건 두드러기 때문에 짓무른 듯 보이는 박박 깎은 머리, 나는 온 얼굴 근육에 힘을 주고 미소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근육 하나라도 풀어지면 통곡하며 무너질 것 같았다 아들이 입을 움직였다 얼굴을 바싹 갖다댔다

아버지

신태야 생일 축하한다

내 몇 살이 됐는데?

이제 여덟 살이다

그라믄 내년에 학교 가겠네

그래

내는 학교에 들어가믄 달릴 끼다

어어

아버지하고 삼촌하고 같이 달리고 싶었다

어어

하지만도 안 되겠재

와?

죽을 거 아이가

무슨 소리 하는 기고

아버지 내는 죽고 싶지 않다

누가 죽는다고 그라노

쪼매 잠이 온다

자라 마

눈을 떴을 때 캄캄하믄 죽어서 땅에 묻힌 거 아닌가 하고 굉장히 무서워진다

엄마가 옆에 있는데 와

엄마하고 아버지하고 사이 안 좋나?

그런 일 없다

아버지 집에 가면 목말 태워 두가

그래 목말 태우고 가자는 데까지 가 주꾸마 등번호 962 조선지구대표 구니모토 우철 선수 1번 라인에 정렬 요이 땅!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따가닥 히힝! 히힝!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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