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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5월 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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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 지 두 달도 안돼 20만부가 팔렸다는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속의 지은성도 테리우스와 비슷하다. 고교 불량서클 ‘4대 천황’의 짱인 만큼 보스기질도 있고 터프하지만 여자보다 예쁜 꽃미남이다. 이 소설을 쓴 열여덟살짜리 소녀 작가 귀여니(본명 이윤세)는 “인터넷에 연재하는 동안 여학생 팬들이 지은성 멋있다고 난리였다”며 “예나 지금이나 여자애들은 키 크고 돈 많고 조폭두목 같은 남자를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그놈…’을 읽고나서 딸에게 보여주며 “옛날 생각난다”고 하더라는 말도 꽤 들었다고 했다.
▷차이점은 있다. 캔디는 테리우스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끝난 뒤 못내 슬퍼했지만 ‘그놈…’ 속의 여주인공 한예원은 그렇지 않다. 5년 후 그들은 가볍게 ‘동거’할 뿐이다. 왜 두 사람을 결혼시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귀여니는 “그런 남자와 결혼하면 일생 망치게요?” 했다. 연애는 멋있는 ‘그놈’과 해도 결혼은 능력 있는 남자와 해야 한다는 얘기다. 요즘 10대는 남자친구와 키스를 하는 것쯤은 능히 있을 수 있는 일로 여기며, 여학생에게만 ‘강요’하는 순결교육을 받으면서 속으로 웃는다고 들려주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10대의 변화를 부모들이 잘 모른다는 것뿐.
▷‘귀여니 현상’을 보는 기성세대는 편치 않다. ‘흑. 넘 행복해. 이대로 죽을 수만 있다면. ㅜ_ㅜ 아, 안된다. -_- 나 배고프다’ 식의, 컴퓨터 채팅을 옮겨온 듯한, 만화대사를 나열한 듯한, 문학이랄 수도 없는 것이 폭발적 인기라는 데 제도권 작가들은 절망한다. 깊이 있는 독서를 안 하고 못해서 생각 짧고 참을성 없는 10대를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청소년의 발칙한 사랑놀음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20여년 전 테리우스를 좋아했던 소녀들도 지금은 대부분 어머니가 되어 아이들 키우며 잘 산다. 가정의 달이자 청소년의 달인 5월, 가족들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하려면 ‘그놈…’ 같은 소도구도 활용할 만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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