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러시아 마피아

  • 입력 2003년 4월 21일 18시 32분


코멘트
마피아는 스파게티 피자와 함께 이탈리아의 3대 수출품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다. 마피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이 수세기 동안 무법 상태에 있을 때 부재지주들이 강도로부터 토지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소규모 사병조직 ‘마피에(mafie)’에서 비롯됐다. 계속된 외세 지배하에서 마피아가 끈질긴 생명력을 갖게 된 것은 시칠리아 주민들이 부실한 공적 정의 대신에 마피아가 제공하는 사적 정의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으로 이주한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치르고 범죄 세계의 지배권을 빼앗으면서 마피아는 범죄조직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돼 버렸다.

▷러시아 마피아는 이탈리아 마피아와 관계없이 구소련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시절에 생겼다.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 조치에 따라 민영화하는 국영기업을 불하받는 사업이 막대한 이권으로 등장했을 때의 일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군대와 KGB가 대규모 감원을 하면서 신체 건장하고 무기를 잘 다루는 실업자가 쏟아져 나왔다. 국영기업을 불하받아 막대한 이권을 거머쥔 사업가들이 퇴역 군인과 KGB 요원들을 사병조직으로 거느리면서 자연스럽게 마피아로 발전한 것이다. 러시아 마피아는 구체제가 붕괴하고 새로운 법적 질서가 자리잡기 전의 공백상태를 비집고 들어가 빠른 속도로 세력을 불렸다.

▷러시아 경제의 40%를 지배한다는 마피아는 부패한 러시아 관료들과 동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최근 크렘린궁과 마피아의 커넥션을 폭로한 바 있다. 특별한 경력이 없던 블라디미르 푸틴이 정보기관장을 거쳐 보리스 옐친에 의해 총리로 임명되기까지에는 옐친과 가까운 마피아 보스의 힘이 컸다는 보도도 있었다. 러시아 마피아는 1998년 루블화 폭락 후 들이닥친 경제위기를 계기로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해 현재 200여개 조직이 북미와 남미 이스라엘 동유럽을 기반으로 세계 58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북한 핵개발 참여 학자들의 망명설에 등장하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나우루는 러시아 마피아의 돈세탁 기지이다. 러시아 마피아들이 나우루에서 세탁하는 자금 규모가 러시아 연간 수출액보다 크다고 하던가. 러시아 마피아들이 러시아 선박의 왕래가 잦은 부산항을 근거지로 마약 총기밀매 인신매매 등 범죄를 저지르다가 이번에는 총격 살인까지 했다. 서울의 나이트클럽에서 수영복 차림에 춤을 추는 여성들 가운데는 러시아 국적이 적지 않고 이들의 배후에도 러시아 마피아가 있다고 한다. 반갑지 않은 러시아산 수입품이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