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291…손기정 만세! 조선 만세!(19)

  • 입력 2003년 4월 13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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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철과 우근은 우물물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툇마루에 젖은 발자국을 남기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밥상에는 보리밥, 된장국, 열무 김치, 콩나물이 놓여 있었다.

“신문은?” 우철은 물김치를 들고 들어온 어머니에게 물었다.

“오늘은 안 왔는데” 희향은 물김치를 우철이 앞에 내려놓았다.

“뭐라꼬? 거 참 이상하네…기태 녀석이 잊어버렸나. 우근아, 나중에 가곡동 보급소에 가서 받아 갖고 와라”

“그보다 애비 너, 에미가 입덧 때문에 일어나지도 못한다. 입덧이란 거는 가만히 있으면 더 심해지는 기니까, 몸을 좀 움직이는 게 좋다고 말은 했지만도”

우철은 관절이 팅팅 부풀고 손톱이 누렇게 변한 어머니의 손가락을 보았다. 어렸을 때는 어머니만큼 손가락이 하얗고 가느다랗고 긴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인가, 어머니의 손가락이 변한 것인가, 남자의 손가락과 별 다름이 없다.

“자옥이는?”

“엄마 옆에서 자고 있다” 미옥이 숟가락으로 물김치를 떠서 입에 넣었다.

“아이고, 오늘도 젖 얻어 먹이러 예주네 다녀와야겠네” 희향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손바닥을 부채 삼아 목 언저리를 부쳤다.

그 때 건너편 양화점 박씨가 두 손에 운동화를 들고 마당을 질러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내 신발이다!” 우근이 막 입에 넣은 보리밥을 뿜어냈다.

“우근아, 밥 먹는 중이다”

“신어 봐라” 우철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을 허락했다.

우근은 박씨에게서 운동화를 받아들자, 툇마루에 걸터앉아 발을 집어넣었다.

“발가락 끝을 세우고 끈을 묶어라. 한 구멍 한 구멍, 꼬이지 않게, 알았나. 너무 꽉 조이면 발등이 아프고, 헐렁하면 벗겨지니까, 자기 발하고 의논하면서 묶는 기다”

“제일 위는?”

“고리를 두 겹으로 해서 나비 모양으로 묶는다. 끈이 풀려서 까딱 잘못 밟으면 다친다.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뒷굽을 밟으면 안 된다. 신발 모양이 뒤틀린다. 달리기하는 사람한테 신발은 목숨 같은 기니까”

“딱 맞는다” 우근은 일어서서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좀 뛰어봐라”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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