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이 땅의 큰 나무'…1000살 나무엔 '삶의 향기'가

  • 입력 2003년 4월 4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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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향기뿐 아니라 생김새도 동양적 신비를 담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전남 순천시 송광사 천자암의 곱향나무는 생김새가 매우 신비로운 대표적인 향나무다.사진제공 눌와
향나무는 향기뿐 아니라 생김새도 동양적 신비를 담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88호인 전남 순천시 송광사 천자암의 곱향나무는 생김새가 매우 신비로운 대표적인 향나무다.사진제공 눌와
이 땅의 큰 나무/고규홍 지음/김성철 사진/368쪽/눌와/2만원

우리 땅에 있는 큰 나무의 삶과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해주는 ‘나무답사기’.

글과 사진을 맡은 두 사람은 수령이 400살은 보통이고, 많게는 1000살이 넘는 전국의 ‘노거수(老巨樹)’를 3년에 걸쳐 찾아다녔다. 그 길을 따라가면서, 긴 시간 모진 풍상을 견디고 독립적으로 버텨온 나무 27종 130여 그루의 속삭임을 전한다.

물푸레나무, 뽕나무, 음나무 등은 요모조모 쓰임새가 많아 사람들이 아꼈고, 느티나무와 은행나무 등은 당산나무와 정자나무로 동네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눠왔다. 전나무, 회화나무, 배롱나무는 멋진 자태로 눈길을 끌었다. 호두나무와 모과나무, 이팝나무와 동백나무 등은 각기 탐스러운 열매와 눈부신 꽃으로 사랑을 받았다.

이 책에선 이들 나무의 생태와 역사, 유래와 특징, 그리고 그 안에 배어 있는 정신까지 두루 짚어보고 나무를 통해 비춰본 ‘사람살이’에 대한 통찰까지 보여준다.

애국가에도 등장하는 소나무는 우리 문화의 상징이자 가장 친근한 나무. 우리말 이름인 ‘솔’은 ‘으뜸’을 뜻하는 옛말 ‘수리’가 변한 것. 으뜸이 되는 나무, 나무 중의 나무라는 뜻이다.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고 가장 빠르게 봄을 알리는 매화나무는 ‘선비의 고매한 기품’을 상징해 선비들의 아낌을 받아왔다. ‘번거로운 것보다 희귀한 것을, 젊음보다 늙음을, 비만보다 수척함을, 활짝 피어난 것보다 꽃봉오리를 귀하게 여기는 꽃’이 매화다. 퇴계 이황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이 ‘저 매화나무에 물 주거라’였다.

‘큰 나무 기네스’도 읽을거리. 국내에서 가장 고령의 나무는 2000살이 넘는다는 울릉도 도동항 절벽 위의 향나무. 동양에서 가장 큰 나무로 인정받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1100살의 나이에 키가 67m에 이른다. 경북 예천군 금남리의 팽나무 ‘황목근’처럼 3700평의 땅을 소유하고, 세금도 꼬박꼬박 내는 나무도 있다.

이 책은 말한다. 큰 나무가 신비로운 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아름다워지기 때문이라고. 말없이 한자리에서 묵묵히 견뎌온 나무들은 세월의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더 늠름해진다.

이 땅의 큰 나무에는 깊은 표정이 있다. 어머니 품속같이 너그럽기도 하고, 때론 신령스럽고, 때론 고고한 선비처럼 기품을 풍긴다. 휭허케 둘러보는 것만으로 나무의 아름다운 자태와 참다운 가치를 발견하기란 힘들다. 계절마다 표정이 다르고,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서 모습이 변화무쌍하므로. 그래서 ‘숨어있는 풍경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에게만 나무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땅에 이런 근사한 나무들이 있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천년을 버텨온 큰 나무들이 인간의 등쌀에 못 이겨 하나둘씩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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