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소설가 지미 카터

  • 입력 2003년 4월 2일 19시 01분


39대 미국 대통령, 200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쯤 되면 인생에 여한이 없을 만한 경력이다. 76세라는 나이도 보통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을 주저케 하는 연륜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찬란한 이력의 주인공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소설가로 등단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호박벌의 둥지’라는 소설이 가을쯤 발행된다고 출판사측이 밝혔으니 소설가 지미 카터의 등장은 이미 예고된 셈이다. 퇴임 이후 국제분쟁 중재자로, 사회봉사활동가로 활약하며 재임 당시보다 더 존경을 받고 있는 이 노인의 왕성한 의욕과 다방면의 재능이 감탄스럽다.

▷카터의 소설 도전이 뜬금없는 일은 아니다. 그는 소설은 아니지만 이미 10여권의 책을 저술한 문필가이다. 특히 90년대에는 거의 해마다 책을 냈다. 대부분이 대통령까지 지낸 자신의 인생 역정을 담은 것이지만 2년 전 출판된 ‘해뜨기 전 한 시간’은 퓰리처상 결선 후보에까지 오를 정도로 문학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여세를 몰아 ‘2차대전 회고록’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에 도전해 보자는 결심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회고록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은 카터의 왕성한 활동을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하다.

▷벌써 소설에 도전해 성공한 최고 권력자도 있다. 미국과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고 있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베스트셀러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2001년 발표한 첫 작품 ‘왕과 자비바’ 등 3권의 소설을 썼다. 왕과 자비바는 후세인을 닮은 영웅적인 왕이 사악한 적대자의 온갖 방해를 물리치고 아름다운 시골 처녀 자비바와 맺어진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사악한 적대자는 미국을, 자비바는 이라크 국민을 상징한다. 그런 작품이니 이라크 국민의 필독서가 된 것은 당연하다. 연극무대에까지 올려져 이라크 국민을 열광시켰다.

▷카터 전 대통령의 소설은 미국의 독립전쟁을 배경으로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식민지 주민들의 고통을 다루는 내용이라고 한다. 하긴 전쟁과 평화는 누구보다 최고 권력자에게 친숙한 주제일 것이다. 소설 같은 상상이지만 카터와 후세인이 작가 대 작가로 만나 대화하면 어떨까. 문학이라는 공통의 눈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이라크전 해법을 찾는 것이 외골수 정치인보다는 쉽지 않을까. 후세인은 미국을 미워하면서도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흠모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설가인 카터에 대한 적개심도 적을 것이니 대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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