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부방위와 주룽지

  • 입력 2003년 3월 31일 19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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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와 친인척 등 권력형 비리에 대해서는 다중감시(cross-check)체제를 구축하고….’ 부패방지위원회의 장밋빛 청사진은 우리나라가 조만간 청렴국가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를 부풀게 한다. 부방위가 대통령 앞에서 부패방지 계획을 밝히고 추진을 약속했으니 발표한 것으로만 할 일을 다했다고 손을 놓지는 못할 것이다. 부방위는 일부 계획에 대해서 목표연도까지 제시하는 용기를 보였다. 부패근절은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것인 만큼 과연 계획대로 추진되는지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부패라는 잣대로 보면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은 부끄럽기만 하다. 지난해 부패감시 국제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TI)의 부패인식지수(CPI) 조사에서 드러난 우리나라의 청렴도 랭킹은 40위. 10점 만점인 CPI에서 겨우 4.0을 얻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부패가 심하다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외국과의 교역 과정에서 뇌물제공 가능성을 가늠하는 뇌물공여지수 조사에서는 러시아 중국 대만에 이어 4위에 올랐다. 국제적 평가가 이토록 부정적이니 부패를 줄이겠다는 부방위의 활약에 희망을 걸게 된다.

▷부패척결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손쉬운 목표가 아니다.페터 아이겐 TI 회장은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부패척결만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부방위가 없어서 부패를 막지 못한 것도 아니다. 지난 정부 초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패척결을 강조한 뒤 지난해 1월 부방위가 출범했으나 각종 게이트로 날이 새고, 대통령의 아들이 둘씩이나 구속될 정도로 권력형 비리가 자행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대통령의 형과 측근이 구설수에 오르자 국민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도 기우가 아니라 뿌리깊은 권력형 비리 탓이다.

▷부방위는 2007년까지 TI 랭킹을 20위권 내외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러나 1년 전 설정한 목표보다 후퇴한 것이어서 어이가 없다. 부방위는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는 2005년까지 TI 랭킹을 20위권 이내로 끌어올리겠다고 보고했다. 왔다갔다하는 계획보다는 결연한 실천 의지가 낫다. 중국의 주룽지 전 총리를 보자. 그는 부패척결에 나서며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부패한 자들에게 주고 하나는 내 것으로 남겨라. 부패자들과 함께 지옥으로 가는 대신 국가를 발전시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재임 기간 내내 부패 줄이기에 전념한 그는 지난달 박수를 받으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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