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그래서 ‘공작정치’ 얘기 들었다

  • 입력 2003년 3월 28일 18시 40분


코멘트
지난해 대선 정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회창씨 20만달러 수수설’ 뒤에 청와대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녹음테이프 등 확실한 증거까지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던 민주당 설훈 의원이 엊그제 서울지법 공판에서 “김현섭 전 대통령민정비서관이 폭로하라며 자료를 팩스로 보내줬다”고 진술한 것이다.

청와대 비서관이 집권당 의원에게 야당 대선후보 관련 자료를 공급하고 폭로토록 한 것은 분명히 정권 차원의 공작정치다. 과연 그처럼 민감하고 중대한 사안이 청와대 ‘윗선’의 개입 없이 비서관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김대중 정부는 병풍 불법도청 등 공작정치의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매수 음모 조작 등으로 얼룩진 우리 정치의 음습한 모습을 국민은 다시 한번 확인한 셈이다.

당시 청와대는 김 대통령이 이미 민주당을 탈당한 만큼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결코 없다고 했는데 이 말도 허구였음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정치 중립을 외치면서 내부적으로는 야당을 파괴하는 일에 앞장섰으니 그런 이중성이 없다. 그러면서도 ‘배후를 밝히라’는 야당의 요구를 정치공세로 일축했던 여권이 아니었던가. 설 의원의 폭로는 대통령의 두 아들 비리의혹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맞선 대선 정국을 반전시킬 만큼 인화력이 대단했고 한나라당과 이회창씨가 받은 타격도 그만큼 컸다.

권력이 국가공권력을 정적(政敵) 제거의 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낡고 병든 정치는 이제 이 땅에서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 ‘아니면 말고’식의 수준 낮은 폭로정치도 청산해야 한다. 김 전 대통령과 당시 청와대 고위인사, 김 전 비서관은 이번 일에 대해 명백하게 사실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다. 정치에 대한 혐오를 가중시킨 설 의원은 “청와대가 제보해서 사실로 믿었다”며 떠넘기는 자세만 보이지 말고 상응하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들은 그가 “사실이 아닐 경우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한 말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