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인수위 아직도 존재하나

  • 입력 2003년 3월 16일 18시 37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각 부처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 이미 활동을 끝낸 대통령직 인수위원들을 배석시켜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여당 내 정식 직책도 없는 인사들이 정책결정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경우 결과적으로 정부 공식 조직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되는 일이다. 청와대는 지난주 있었던 재경부 농림부 국방부 업무보고에 이어 앞으로 있을 부처 업무보고에 관련분야 인수위원들을 계속 참여시킨다는 방침이다.

청와대는 부처 업무보고 내용이 새 정부 정책의 큰 줄기와 어긋나지 않는지 점검하는 것이 이들의 역할이라고 밝혔으나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명분이든 정부 위에 또 하나의 정부가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고 공무원들은 장차관 말고 또 다른 상관을 의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부 장관이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침과도 거리가 멀다.

집권측은 이것이 ‘열린 행정’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전 인수위원들의 배석 때문에 말문이 막히는 ‘닫힌 행정’이 될 것을 걱정하는 공직자들도 많다. 인수위가 정해놓은 정책방향과 일치하는지를 점검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어떻게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가능하겠는가. 관료조직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았다는 공무원 사회의 비판을 받아온 인수위였기에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 국가 운영은 의지와 내용 못지않게 형식과 절차도 중요하다. 업무보고에 전직 인수위원들이 꼭 참석해야 한다면 먼저 합당한 자격을 부여하는 작업이 선행됐어야 했다. 임무가 끝난 인수위원들을 법적 지위가 모호한 상태로 참석시키는 것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20여일밖에 안된 상황에서 절차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비공식 측근정치, 사적(私的)정치를 비판해온 노 대통령이 전 인수위원들을 배석시키는 것은 그런 유의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오해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료사회의 우려에 청와대가 귀를 기울이기 바란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