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선우석호/국정 '시스템' 으로 풀자

  • 입력 2003년 3월 11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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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대통령과 평검사들간의 대담이 지상파로 생중계됨으로써 우리나라 통치사에 하나의 파격적인 행사로 기록되었다. 정부중앙청사 대회의실을 가득 채운 열기는 대단했다. 국민도 이 대담을 지켜보면서 대통령의 모험 정신과 검사들의 뜨거운 가슴에 당초 견고하기만 했던 불신의 벽이 조금씩 녹아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양측의 기본 입장이 바뀌지는 않은 듯했다.

▼법-제도 있지만 마음대로 해석 ▼

대통령이 직접 나서 개혁의 진의를 믿어 달라고 외쳐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 집권자들에 대한 불신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날 제도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법정신을 무시한 예가 많았던 터라 평검사들은 인사위원회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검사장 인선 방식이 과거 악습의 재현이라 본 것이다.

아직도 이 땅에 절차적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법과 제도가 시대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낙후성에도 문제가 있으나 그 동안 이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남용했던 정치권력자들의 작태 때문이었다. 법정신이 훼손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각 계층간의 불신의 벽은 점점 두터워져 왔던 것이다.

불신은 여러 형태로 다시 싹튼다. 이번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를 보자. 온갖 애절한 사연을 가지고 고통 속에 숨을 거둬야 했던 희생자들, 눈물 없이 접할 수 없는 대구사람들의 이야기는 온 국민의 가슴을 숯덩이로 만들었는데 무엇 하나 깔끔하게 처리되는 것은 없다. 공사 직원 몇 명을 구속하고, 재난관리청이라는 공무원 조직 하나를 만들 예정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국민이 진정 바라는 바는 철저한 진상 규명을 통해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제도와 시스템의 구축인데 이를 위한 노력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구는 지금 불신이 아니라 나라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아는 일이지만 이번 참사의 핵심은 중앙관제실 직원들이 1080호 전동차를 불타는 중앙역으로 진입시켜 정차하도록 한 결정이다. 우선 이런 상황 판단을 하게 된 경위를 밝혀야 한다. 모니터 시스템의 문제인가, 이런 상황에는 정차나 전속력 통과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매뉴얼이 없기 때문인가, 교육 부족으로 상황 판단을 잘못한 것인가, 아니면 중앙관제실 내 전 직원이 근무태만 상태에 있었던 것인가….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밝혀진 게 없다. 만일 유사사태가 서울의 신도림역이나 종각역에서 일어날 경우 비극을 막을 방재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이 같은 참사를 막기 위한 조직적이고 대규모적인 시스템 구축 노력이 보이지 않으니 불신의 싹은 기하급수적으로 자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안팎으로 여러 도전에 직면해 있다. 북핵문제로 온 국토가 전쟁의 위험에 노출돼 있고, 이라크 사태로 유가가 폭등하고, 투자 및 수출 부진에 내수마저 부진해 자칫 가계대출이 금융위기로 연결될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이런 조짐이 심화되면서 외국인투자자들의 일탈이 본격화될 경우 우리는 또다시 상상하기도 싫은 경제 여건을 맞이해야 한다.

정부는 이런 위기를 관리하면서도 사회 모순을 제거하는 개혁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에 놓여 있다. 위기관리와 개혁은 상치된 주제인 듯 보이지만 해결 방법은 유사하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IMF의 권고를 받아 경제시스템의 전환으로 풀었듯이 이번 위기도 시스템의 전환으로 풀어야 한다. 북핵문제는 한미간의 신뢰체제 강화와 비핵화원칙의 고수로, 경제는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는 일관된 경제정책의 추진으로 풀어야 한다. 국가간 신뢰, 정부와 경제계간의 상호 신뢰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인 것이다.

▼상호신뢰가 문제해결 출발점 ▼

개혁 또한 불신의 벽을 그대로 방치한 채 이룰 수 없으며 국민의 신뢰를 받을 때에만 성취될 수 있다. 불신은 제도와 시스템의 구축, 그리고 이를 준수하려는 법정신으로 풀어야 한다. 즉 위기관리와 개혁은 일견 서로 다른 주제인 듯 보이나 그 원천에는 국가운영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다는 큰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선우석호 홍익대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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