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민의 투자여행]<4>下手는 원금 잃을 생각 안한다

  • 입력 2003년 3월 11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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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도버로 가는 차안은 시끄러웠다. 잔뜩 들뜬 맘에 두 입술이 쉴 줄을 몰랐으니. 얼마나 따줄까, 뭐가 갖고 싶으냐, 오늘이 그 카지노 파산하는 날이다…. 천하의 하수(下手)가 따로 없었다.

사실 도박이든 주식이든 하수는 못 속인다. 잃을 생각, 상대편 생각은 안 하고 제 돈 딸 궁리만 하다 금방 탄로가 나니까. 내가 사는 이 주식, 파는 사람들은 왜 팔까 한번이라도 의심해 보는 하수가 있나 보라. 깨질 땐 어떡할까 준비를 미리 해두는 하수 있나 보라. 단연코 없다.

고스톱에서도 하수는 남의 패 안 보고 내 점수 날 생각만 한다. 남은 벌써 ‘피’가 열한 장인데도 나는 청단 석 장 꾹 거머쥐고 두리번거린다. 그러니 파국은 시간문제고, 막상 그 파국이 오면 우왕좌왕 하수 티를 낸단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영락없이 나도 그런 하수였던 것이다.

그렇게 허풍 떨기를 두어 시간, 저 멀리 오른편에 카지노 건물이 보였다. 난 마치 무슨 죄지은 사람처럼 가슴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온 몸엔 짜릿하게 전율마저 흘렀다. 야, 이 많은 돈, 따면 어디에 다 쓰지….

그런데 앞에 가던 동생은 웬일인지 왼쪽 깜빡이를 켰다. 얘가 왜 깜빡이를 반대로 넣나 하고 있는데, 동생은 건너편 주유소를 향해 내 차를 인도했다. 그리곤 차에서 내리더니 두 차 모두 기름을 가득 채우게 했다. 까딱하면 집에도 못 가는 수가 있으니 일단 그리해 두자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그런가 하고 수긍했다. 기름 값만큼 밑천이 줄어든 게 약간 못마땅하긴 했지만.

그리고 마침내 카지노 1층 홀로 들어서는 순간, 난 입이 딱 벌어졌다. 온통 현란한 불빛에 딸랑거리는 코인 소리…. 와,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 아닌가…. 당장 전투를 시작하자고 난 동생에게 눈짓을 했다.

그런데 동생은 본 체 만 체 프런트 데스크로 발길을 돌렸다. 물어보니 방부터 하나 잡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선불을 주고. 완전 초보라 입 꽉 다물고 착실히 수업을 받던 난 마침내 꼭지가 돌고 말았다. 아니, 신용카드도 놓고 왔지, 돈도 얼마 안 가져왔지, 이렇게 돈도 다 써 버리지, 도대체 뭘 갖고 싸우자는 말이냐….

하지만 동생은 더 이상 말 붙일 틈도 안 주고 돈을 내 버렸다. 잘못하면 내일 아침에 한 집은 잡혀 있고 한 집은 집에 돈 가지러 가는 수가 있다. 그런 불상사를 피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는 게 동생의 변이었다. 그런데 설마 그게 끝이겠지 했던 나의 계산은 완전히 오산이었음이 곧 밝혀지는데….

시카고투자컨설팅대표 cic2010@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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