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盧 대통령의 뗏목’

  • 입력 2003년 3월 10일 19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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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권이 뜨면 세상이 소란하게 마련이다. 권력의 주류와 비주류가 뒤바뀌고 파워엘리트가 이동하면서 크고 작은 마찰과 갈등이 세상을 시끄럽게 한다. 하기야 한번 주류면 마르고 닳도록 주류인 안정보다는 권력이동에서 오는 변화와 활력이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다. 문제는 새로이 힘을 가진 세력이 어떻게 ‘가치관과 코드’가 맞지 않는 이들을 포용해 한편으로 이끌어나가느냐는 것이다.

가치관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고 해서 편을 가르기로 한다면 자칫 ‘경주마 권력’이 될 위험성이 크다. 앞만 보고 달리도록 차안대를 씌운 경주마처럼 권력이 독주하면 그 어떤 선의와 개혁의 열정도 독(毒)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역사가 웅변한다. 나는 ‘토론공화국’을 주창하는 노무현(盧武鉉) 정권이 그 같은 우(愚)를 범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우려마저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파격(破格)을 파격이라고 하는데도 기득권세력의 타성(惰性)이라는 답이 돌아와서야 권력 독주의 조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언덕에 오르면 뗏목 버려야▼

불가(佛家)에서 이르기를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고 했다. 언덕에 오르면 뗏목을 버리라는 것이다. 여기서 벌(筏:뗏목)이란 정법(正法)을 비유한다. 즉 정법의 뗏목이라도 응당 버려야 할 때가 있는데 하물며 비법(非法)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느냐는 가르침이다.

노 대통령은 언덕에 올랐다. 그렇다면 그가 버려야 할 뗏목은 무엇인가. 물론 노 대통령이 언덕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뗏목 덕택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여권의 비주류정치인에서 일약 대통령후보가 되고 끝내 극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던 데는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읽는 눈과 자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신과 배짱, 그리고 개혁에 대한 열정 등이 어우러져 작용했을 터이다. 거기에 젊은 세대의 감성에 맞는 현장화법과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노사모)’, 인터넷이 강을 건너 언덕에 이르게 하는 뗏목이 되었다.

고언(苦言)하건대 노 대통령은 이제 그 뗏목을 버려야 한다. 대통령의 말은 정치인이나 대통령후보의 말과는 달라야 한다. 파격의 현장언어는 신중한 지도자의 언어로 바뀌어야 한다. 반드시 해야 할 말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가려야 한다. 되도록 말을 아껴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상(像)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은 좋다. 그러나 ‘낮은 대통령’이 말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작용할 수 있다.

얼마 전 경제부총리가 법인세를 단계적으로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노 대통령은 하루 만에 제동을 걸었다. 또 부산지역 금정산과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도 공사에 항의해 한 스님이 단식농성을 한다고 하자 즉석에서 공사중단과 노선 재검토를 지시했다.

사안의 중요도나 판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나치게 성급한 ‘대통령의 말’이었다고 본다. 이런 식이어서는 경제부총리가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번복을 하더라도 경제부총리가 하도록 해야 했다. 고속철 공사건도 주무부처에서 재검토하고 관계장관이 발표하도록 하는 편이 나았다. 그래야 내각에 권한을 넘겨주는 ‘분권형 대통령’이 실재할 수 있다.

‘조폭언론 진압단’을 만들겠다는 식의 노사모는 대통령에게 부담이 될 뿐이다. 노 대통령은 하루빨리 뗏목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참여정치라 해도 참여와 집행은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인터넷을 통한 현실정치 참여가 비록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자 실질적 민주화에 기여한다고 해도 그 자체가 정부의 정책 집행을 좌우해서는 곤란하다. 일부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밀려 교육부총리가 오랫동안 공석을 면치 못한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경계할 일이다.

▼검찰보다 급한게 정치개혁▼

노 대통령은 지난주 국정토론회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정치권이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했다. 노 대통령은 뗏목은 버리고 정치개혁에 앞장서야 한다. 검찰개혁보다 급한 게 정치개혁이다. 정치개혁 하나만 제대로 해도 노무현 정권은 ‘성공한 정권’이 될 것이다. 반대로 정치개혁을 하지 못하면 다른 개혁에 성공한다고 해도 ‘실패한 정권’이 될지 모른다. 정치개혁이야말로 모든 개혁의 시작이자 끝이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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