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이동순/“오, 大邱! 힘든 시간 이겨가요”

  • 입력 2003년 2월 21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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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무이, 지하철에 불이 나 난리라예. 못나갈 것 같아예. 저 죽지 싶어예.” “어무이! 부디 애들 잘 좀 키워 주이소.” “여보 연기가 많이 들어와요. 어둡고 다쳐서 몸을 움직일 수가 없어요.” “엄마, 숨, 못 쉬겠어. 엄마, 사랑해!” “내 딸아! 열차에 불이 났다. 살아나갈 수 없을 것 같으니 꿋꿋하게 살아라.” “119지요? 빨리 좀(콜록콜록)! 빨리!” “아, 앞이 안보입니다.”

“뱃속의 아이를 두고 어찌 혼자 떠납니까?” “엄마! 내 왔다! 왜 말이 없노?” “불 탄 너를 또다시 불에 태우는구나!” “마지막 인사도 못 나누고 너는 이렇게 떠나가니?” “편하게 가라! 사랑했다!”

이 마지막 절규의 말 앞에서 도대체 무슨 말이 달리 필요하겠습니까? 저는 가슴 속에서 새삼 비통함이 솟구쳐 책상에 몇 차례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다가, 다시 분연히 일어나 이 글을 씁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억울하고, 그 어이없는 죽음들 앞에서 말문은 막히고, 억색(臆塞)하여 숨조차 내쉴 수가 없습니다. 지금 모든 유가족들과 전체 대구 시민들은 삶의 표정을 잃어버렸습니다. 모두들 굳은 얼굴, 침통한 표정, 수심에 가득한 얼굴! 그 면면으로 주르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저절로 하염없이 흘러내립니다.

저는 평소에 바람의 말과 구름의 표정을 조금은 읽을 수 있다고 자신했었는데, 이 며칠간 대구의 바람과 구름은 너무도 어둡고 스산하며 뒤숭숭하기 짝이 없습니다. 햇살도 암한(暗恨)으로 제 빛을 잃어버렸습니다. 어찌할 줄 몰라 공연히 서성이며 깊은 탄식을 하다가 고개를 떨구는데, 제 귓전에는 오호라, 중얼거리는 바람의 말이 들려왔습니다. 구름이 떨군 섬뜩한 가랑비가 두 볼에 느껴졌습니다. 아, 귀기울여 들으니, 그것은 바로 엊그제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신 이의 말씀입니다. 당신들의 답답한 가슴을 대신 좀 전해 달라고 하는 절박한 채근이었습니다. 저는 제가 들었던 혼령들의 말씀을 여기에 옮겨 보겠습니다.

*아무리 손짓하고 두드려도 앞이 보이질 않데요? *모두들 제 사진 앞에 모여 앉아 땅을 치며 울고 계시군요. *아, 엄마! 엄마 품에 다가가 안겨도 엄마는 제가 온 것을 모르시는군요. *어머니 병문안 가다가 불이 나서 갑자기 떠나왔는데 기어이 불효자식이 되고 말았군요. *제 안전모, 제 면장갑, 제 검수업무 수첩… 저기 그대로 있네요! 그래도 저는 여러 사람을 밖으로 내보내고 쓰러졌었지요. *개학하면 학교에 그리도 가고 싶었는데… 어머니 제 학용품 좀 잘 거두어 주셔요. *오, 그때는 정말 절박했었어요. *아무 생각도 나질 않고 다만 두렵고 무서운 공포에 떨리기만 했었죠. *이제 그 고통의 시간 지나고 나니, 오히려 제 영혼은 육신을 빠져나와 홀가분하네요. *다만 앞으로 평생을 통곡과 한으로 살아갈 가족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꽉 멥니다. *나는 지금 왜 이 어둡고 쓸쓸한 곳에 와서 이런 말을 하고 있지요? *오, 우리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던 밥상. TV를 보며 함께 웃고 어깨를 치며 쓰다듬던 기억들. *저녁 늦도록 돌아가지 않던 저를 기다리다 휴대전화로 꾸중하시던 일. *늦은 밤 학교 앞에서 기다려 주시던 부모님. *우리가 서로 다투고 토라지던 일들. *이 모든 것이 지금 생각하니 극진한 사랑이었어요. 그 극진한 사랑의 홍수 속에서도 우리는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어요. *당신은 지금도 휴대전화에 <보고싶다^^>는 문자를 써서 자꾸만 저에게 보내시는군요. *당신은 화장터에서 재가 되어 나온 저를 뒤적이시며 불에 타서 절반만 남은 반지를 기어이 찾아내고 또다시 통곡하시는군요. *도대체 제 몸은 어디로 갔습니까? *다만 연결되지 못하는 안타까움! *이 깊은 한을 전할 수 없는 서러움! * 슬프고 우울한 영혼들끼리 어울려 공중을 떠다녀야만 하는 이 공포와 전율의 시간을 저는 참을 수가 없습니다. *아, 우리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앞으론 그 날 손꼽아 기다리며 힘든 시간 이겨 갈게요. *오, 사랑합니다. *바람결에 실어서 다시금 외칩니다. 영원히! 영원히! 사랑할 겁니다!

이동순 시인·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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