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군사분계선(MDL)

  • 입력 2003년 1월 28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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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분계선(Military Demarcation Line)은 남북으로 폭이 4㎞인 비무장지대의 중앙을 지나는 선이다. 한반도를 248㎞(155마일) 길이로 가로지르는 이 선이 바로 남북한의 진짜 경계인 셈인데, 엄밀하게 말해 이것은 그어져 있는 ‘선’이 아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군사분계선은 임진강변의 표지판 제0001호부터 동해안까지 모두 1292개의 표지판으로 이루어진 ‘점의 연결’일 뿐이다. 그런데 이 표지판 중 상당수가 지난 50년간 관리 소홀과 홍수로 유실되고 지형이 바뀌기도 했다. 군사분계선은 우리가 상상하듯 철조망으로 반듯하게 구분돼 있지 않고 세월 따라 유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는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정전협정의 산물이다. 정전협상 당시 공산측은 38선을, 유엔군측은 그 시점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접적선(Line of Contact)을 군사분계선으로 정하자고 팽팽히 맞섰다. 결국 유엔군이 비무장지대를 남북 각각 38.4㎞(24마일)로 하자고 했던 제안을 공산측에 양보해 남북 2㎞씩으로 폭을 줄이고, 공산측은 유엔군이 제시한 접적선을 수용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하지만 정전협정이 조인된 후 발효되기까지 불과 10여시간 동안에도 양측은 화력을 총동원해 치열하게 맞붙었다. 군사분계선을 조금이라도 더 상대방 쪽으로 밀어붙이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곳 비무장지대를 넘나드는 사람들의 면면도 눈에 띄게 바뀌어 갔다. 남북 대결이 치열했던 60년대에는 김신조 등 무장공비가 이 지역을 넘어 남행했고, 피랍됐던 푸에블로호 승무원들도 군사분계선을 넘어 자유를 되찾았다. 60, 70년대에 남쪽에 표류한 북한 어부들은 군사분계선 너머 자기네 지역으로 건너가자마자 남측에서 받은 옷과 선물을 벗어던지는 ‘스트립쇼’를 보이기도 했다. 밀입북했던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양 등이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귀환한 것도 당시로는 큰 사건이었다.

▷엊그제 남북 군사당국이 민간인의 군사분계선 통행과 관련된 협상을 타결지었다. 이로써 경의선 및 동해선 연결과 개성공단 착공, 금강산 육로관광 등 남북간 현안을 추진하는 데 첫 번째 걸림돌이 제거된 셈이다. 그러나 이건 말 그대로 첫걸음일 뿐이다. 남북한 주민들이 군사분계선을 건너 자유롭게 왕래하는 세상이 빨리 와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한 핵문제부터 순리대로 풀려야 한다. 한 손엔 무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 악수하는 상태로는 신뢰가 쌓일 수 없기 때문이다.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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