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221…몽달귀신(23)

  • 입력 2003년 1월 19일 17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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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만들어주는 지짐은 따끈하고 맛있고, 뱃속이 따끈따끈해진다. 형수가 우리 집에 시집을 온 후로는 형수가 밥을 짓는다. 형수한테는 절대 비밀이지만, 나는 엄마가 만들어주는 밥이 더 맛있다. 엄마는 아버지한테도 형수한테도 지짐을 갖다 주었다. 나는 엄마가 기운을 되찾은 것 같아 기뻤다. 엄마는 형수하고 아기가 있는 방에서 짚으로 싼 꾸러미를 들고 나왔다.

“그게 뭔데?”

“태반이다”

“태반이 뭔데?”

“형수 뱃속에 아가 있을 때 덮었던 이불이다. 너도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태반 위에서 잠자고, 탯줄로 맘마를 먹었다”

“탯줄은 또 뭔데?”

“엄마 배꼽하고 너 배꼽하고 이어져 있었던 줄이제. 지금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어디에?”

“이 다음에 보여주꾸마”

“그 태반, 어쩔 건데?”

“강에다 떠내려보내야제. 건강하고 탈없이 잘 자라게 해 달라고 조상님한테 비는 거다. 자, 엄마하고 같이 강에 가자”

희향은 오른팔로 짚꾸러미를 옆에 껴안고 고무신에 발을 꿰었다.

“비가?”

“어데, 비 안 온다”

희향은 눈을 잔뜩 찌푸리고 손바닥을 위로 향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손바닥에 물기가 느껴졌다. 비다. 체에 친 밀가루처럼 가늘디가는 비.

우근은 우산을 들고 강 쪽으로 걷기 시작한 희향을 종종 걸음으로 좇았다. 강가에 한 줄로 죽 늘어선 미루나무가 비 내리는 하늘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용두산 쪽으로 강가 길을 걷다가 아랑각 앞에서 둑을 내려갔다.

희향은 꾸러미를 강물에 던졌다. 풍덩, 소리내며 가라앉았다가 떠오르는 짚꾸러미에 멍석에 둘둘 말려 애장터에 묻힌 소원의 시신이 겹쳐졌다. 딸이 빠져 죽은 강에 첫 손자의 태반을 떠내려보내다니, 희향은 입술을 꼭 다물고 비내음이 나는 대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그 숨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좀처럼 내뱉어지지 않았다.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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