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은 '구중궁궐'에서 나와야

  • 입력 2003년 1월 5일 19시 00분


지금의 청와대는 왕조적 냄새가 물씬 풍긴다. 대통령 집무실은 궁전처럼 거창해 찾는 사람들에게 위압감부터 준다. 여기에다 비서실 건물과 턱없이 멀리 떨어져 비서진이 보고를 하려면 5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노무현(盧武鉉) 당선자의 지시에 따라 이 같은 청와대 구조의 개편 작업에 들어가기로 한 것은 옳은 일이다. 인수위는 어제 ‘열린 청와대, 일하는 대통령’의 개념에 맞게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든, 비서실을 옮기든 대통령과 비서진이 나란히 함께 일하는 구조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권위주의의 상징인 청와대를 국민친화적인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통령과 비서진이 수시로 만나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다면 민심 전달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국민에게도 한결 친근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

돌이켜보면 ‘구중궁궐’ 같은 대통령 집무실은 일과 능률면에서 지극히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인의 장막’을 두껍게 해 물리적으로 국민과 청와대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들었다. 대전(大殿) 같은 지밀한 곳에 앉아서 열린 마음으로 대화와 설득의 정치를 펴기란 애초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작업이 단순히 청와대 안의 담장을 허무는 것에 그치지 말고 청와대의 온갖 권위주의적 요소를 제거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 이유 없이 까다로운 경호나 의전관행의 거품을 걷어내는 것도 이 중 하나다. 고위인사 임명장 수여식 때 거리를 두고 구령에 따라 일제히 절을 올리는 것 같은 모습도 사라져야 할 구시대 유산이다.

한 가지 걱정은 5년 전처럼 청와대 구조 개편이 또다시 흐지부지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현 정부 인수위 시절에도 처음엔 이 문제가 거론되다가 경호상 이유로 없었던 일이 돼버렸다. 다행히 노 당선자도 ‘유연한 경호’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이번엔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 ‘열린 청와대’는 개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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