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박은정/인간이 인간의 제작물?

  • 입력 2002년 12월 27일 18시 00분


과학의 탈을 쓴 인간복제 기술자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그동안 생명공학기술과 관련해 전 세계적으로 과학집단이건 일반대중이건 이것만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선을 그었던 경계가 무너졌다.

인간에게 복제기술을 적용한다는 것은 그 기술 적용자가 원하는 인간을 만들어내겠다는 뜻이며, 이는 그것 자체로서 목적인 인간성을 침해하는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시험관 아기가 탄생했을 때는 사실 수태방법에 있어서 인위적 기술 개입이 문제였지, 정자와 난자의 수정에 의한 인간생명의 탄생과정 자체에는 거슬림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에 비하면 인공적 수태에 대한 반감도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적용되는 복제기술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은 인공성이나 그 기술적 위험성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인간이 인간에 의한 제작물이 된다는 데 있다. 이는 우리가 지금껏 역사와 경험을 통해 공통된 정서로 느끼는 인간됨의 가치와 사회가치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다.

제작자의 뜻에 따라 만들어진 모든 제작물은 필연적으로 제작자의 의도 아래 놓이는 통제 받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갓 태어난 복제아기가 인간이 아니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인간복제 기술을 우리가 전율과 경악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복제의 금기가 깨어진 만큼, 인간복제를 허용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실제로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호주 등을 포함해 현재 10개국 이상이 인간복제를 법률로 금지하고 있으며(최고 15년까지의 징역형), 미국 중국 등 금지입법을 추진 중인 국가도 현재 10여개국 이상이다. 올 2월과 9월 유엔에서도 ‘인간복제 금지 국제협약’ 체결을 위한 특별회의가 개최되어 현재 각국이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인간복제를 단순히 불임치료라는 의료목적이나 과학발전 논리로만 접근하고자 하는 시도는 지극히 협소할뿐더러 기만적이다. 복제기술이 동물에 적용되는 과정에서 무수히 도축되었을 온갖 기형들과 어미들을 떠올릴 때, 외견상 정상적으로 보이는 이번 복제아기가 태어나기까지 기술적 시행착오 속에 얼마나 많은 기형 탄생과 유산, 산모의 희생이 따랐을는지는 상상도 하기 싫다.

이번에 복제기술을 통해 여자아기를 태어나게 한 ‘클로네이드’는 미국의 종교단체와 연계된 조직으로서 극도의 보안유지 속에 인간복제를 시도한 만큼, 태어난 아기가 복제양 ‘돌리’처럼 체세포핵 이식술에 의한 복제아기인지는 현재 추정단계일 뿐, 아직 과학적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 윤리적 비난을 무릅쓰고 인간복제를 강행한 클로네이드 소속 과학자는 프랑스의 여성과학자 브리지트 부아셀리에 박사라고 한다. 인간복제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는 이탈리아의 안티노리 박사도 마찬가지지만, 이들 복제기술자는 지금까지 복제와 관련해 다른 과학자들과 학술정보를 교환하거나 해당 학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하는 등 정상적인 과학연구 활동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상적인 과학자라면 국제사회를 포함해 대다수의 사회 성원들이 한결같이 윤리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여기는 행위를 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번 인간복제를 계기로 생명과학계를 보는 일반 대중의 의혹의 눈초리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이는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 위축으로 연결될 것이다. 또한 세계적으로 인간에 적용되는 생명복제기술 및 그 유사기술에 대한 규제 요청도 한층 커질 것이다. 우리나라도 지난해 사회적 합의를 모으다가 실패한 생명안전 및 윤리관련 입법 논의를 조속히 재개해 마무리지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생명공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 우위국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배아로부터 확립된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병 치료술을 개발하고자 하는 연구 등에서는 단연 기술 선도국의 지위에 있다. 이러한 지위에는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책무가 따른다. 정부는 최근 들어 투자를 증대한 생명공학계가 결실을 보도록 하기 위해서도 생명안전 및 윤리관련 법제 정비를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다.

복제기술만이 아니라 인간배아, 생체조직 연구 등은 미리 정해진 법률이나 지침에 따라 윤리성을 검토하는 엄격한 심사절차를 거쳐 선별적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주요 생명공학 선진국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이러한 까다로운 절차가 연구자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불만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중의 신뢰를 잃거나 투자가 위축되는 것에 비하면 불편을 감수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박은정 이화여대 교수·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