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문자세대와 영상세대의 갈등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23분


이번 대통령선거에서도 지역대결 구도가 여전히 위세를 떨쳤지만 박빙의 접전에서 승부를 가른 것은 역시 젊은 유권자들이었다. 이들이 노무현 당선자를 전폭 지지한 것은 물론 그가 지닌 진보와 개혁적 이미지 때문이었다. 젊은층이 어느 세대보다도 변화를 갈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불과 57만표 차로 희비가 엇갈린 선거전에서 노 당선자를 지지한 젊은 유권자들의 기쁨 못지않게,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윗세대들이 느낄 패배의 아픔과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이들도 나름대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가 미래에 대해 고민한 끝에 ‘한 표’를 행사했을 것이다.

▼세대차 ´세계 최고´▼

이번 선거에서는 이처럼 ‘세대간 대결’이라는 전혀 새로운 양상이 나타났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40대 중반을 기점으로 윗세대는 이회창 지지, 그 아래 연령층은 노무현 지지로 양분화되었다고 한다.

나이가 젊을수록 변화와 개혁을 원하고 중년 이후의 세대에서는 안정을 바라는 것은 어느 사회나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세대간 대결’의 양상은 단순한 의견차이나 시각차가 아닌 살벌한 느낌마저 없지 않았다. 한 집안에서 부모와 자식간에 지지후보가 갈려 갈등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것은 세대 간극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것이 부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이를테면 세대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재, 서로에 대한 적대감, 조직의 효율성 상실 등 심각한 사회적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대차가 갈등이나 위기로 이어질 조짐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미국의 석학 로널드 잉글하트는 7년 전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세대차가 큰 나라라고 분석한 적이 있다. 그가 세계 43개국을 상대로 사회과학적 방법을 동원해 연구한 결과다. 한국 사회에서 세대차가 유난히 큰 것은 농경사회에서 급속하게 산업사회로 옮아갔고 6·25전쟁까지 겪었기 때문에 세대간 사고방식의 차이가 너무 확연하다는 것이다. 그는 세대차가 앞으로 한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세대간 대결’이 잉글하트가 예언한 ‘세대간 위기’로 이어질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번 선거를 통해 젊은층이 갖고 있는 신념이나 이상이 ‘표’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가시화된 것은 분명하다. 이에 대한 윗세대의 역작용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앞으로 세대차의 해법이 중요한 과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년층이 책에 익숙한 ‘문자세대’라면 젊은층은 TV를 중심으로 한 ‘영상세대’라는 점은 세대간 단절을 더욱 확대하는 요인이다. 논리와 이성을 중시하는 문자세대와 감성과 직관을 중시하는 영상세대는 화학적 물리적으로 대립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식들은 부모들을 ‘답답한 아버지’라고 고개를 돌리고 부모들은 자식들을 ‘기본이 안 된 아이’로 못마땅해 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층에 생활화된 인터넷도 이 둘 사이의 인식 차를 벌리고 있다.

보다 현실적인 것으로 취업과 주택, 출세의 문제도 젊은층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바늘구멍인 취업난이 이들을 막막하게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윗세대들은 상대적으로 주택 마련이 수월했지만 요즘 젊은층은 평생을 모아도 서울 강남지역에 아파트 한 채 마련하기 힘들다. 미래의 희망인 출세도 윗세대들로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원하는 목표를 이룰지 도무지 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이성’과 ‘감성’의 조화▼

갈등의 치유와 극복은 기본적으로 정치의 몫이다. 정치 기능이란 여러 집단의 이해를 조정하고 화합을 모색하는 일이 아닌가. 새 대통령은 세대 간극이 더 벌어지기 전에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상호조화의 원칙이다. 감성세대의 가벼움은 윗세대의 이성과 경륜으로 보완될 수 있으며 문자세대의 경직성은 영상세대의 창의성으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갈등은 극한대립으로 치닫는 적이 많았으며 그 조화를 꾀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선거를 마친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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