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아메리카:미국, 그 마지막 제국´ 외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7시 33분


◇아메리카:미국, 그 마지막 제국/최병권 이정옥 엮음/416쪽 1만5000원 휴머니스트

◇민주주의 제국:미국 단독 중심의 새로운 세계질서/후지와라 기이치 지음 김희진 옮김/195쪽 9000원 에머지

새로운 ‘제국’이 탄생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했다. 이미 군사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 관계 속에서 전 세계적으로 경제 블록화도 이뤄지고 있는데 새로운 제국의 탄생이라니, 그건 시대착오적 발상이란 생각이었다.

그러나 제국이 이미 탄생했음을 확인해 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2001년 9월11일 ‘미국’이란 초강대국의 심장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테러가 발생했고 이에 대응해 전 세계는 초강국을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어느 나라도 거역할 수 없는 ‘제국’은 이미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이 두 권의 책은 로마제국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새로운 제국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제국’이란 무엇일까?

‘민주주의 제국’의 저자인 후지와라 기이치 교수(도쿄대 대학원·국제정치)는 ‘제국’의 조건으로 네 가지를 들었다. 강력한 군사대국, 다민족을 지배하는 국가, 해외 식민지를 지배하는 국가, 세계경제의 지배적 세력. 경쟁을 불허하는 강력한 군사력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국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세계경제의 질서를 뒤바꾸고 있는 미국은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

세계 각국 진보적 지식인들의 글을 모은 ‘아메리카’에서 영국 ‘가디언’지 논설위원인 조너선 프리드랜드는 미국을 직접 로마제국에 비교했다. 두 나라는 똑같이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예산을 가지고 최신 무기로 무장한 데다가 가장 잘 훈련받은 압도적 군사력을 가졌다. 놀랄 만한 속도로 군대와 보급품을 세계 곳곳에 옮길 수 있도록 했던 ‘로마 가도’ 대신 지금 미국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정보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다.

엄청난 테러를 겪은 것도 두 나라가 비슷하다. 기원전 80년 그리스왕 미트리다테스는 그리스에 사는 로마인을 모두 살해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학살된 로마인이 약 8만명. 당시 로마인들이 받은 충격은 9·11테러 후 미국인들의 충격과 똑같다. “도대체 왜 우리가 이처럼 미움을 받아야 하나?”

후지와라 교수는 ‘제국’으로 인해 황폐해진 유엔을 재건해 제국의 독선에 의해 붕괴된 ‘국제관계의 공공 영역’을 회복해야 한다고 제안하지만 아직 ‘제국’의 폐해를 실질적으로 극복할 대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새로운 ‘제국’의 등장에 당혹스러워하며 비판의 날을 세우는 세계 지식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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