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디즈니랜드가 좋아˝

  • 입력 2002년 12월 16일 18시 42분


미키 마우스와 그렇게 놀고 싶었을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들 김정남이 최근 파리 디즈니랜드에 가려다 프랑스 입국을 거부당했다. 지난해 5월 일본 디즈니랜드에 가려고 위조여권을 쓰다 망신당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서른을 넘긴 나이, 부친을 빼다 박은 덩치. 어디로 보나 아이들 노는 판에 끼어들 남자는 아니다. 게다가 자국발(發) 핵구름이 세계를 뒤덮고 부친은 미국을 상대로 벼랑끝 전술을 펴고 있는 이즈음, 가장 ‘비오락적인 국가의 황태자’인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장 미국적이고 오락적인 디즈니랜드에 가려했을까.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의 저택 이름이 네버랜드다. 아이 적부터 노래하느라고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던 그는 아이를 셋이나 둔 지금도 장난감과 동물에 둘러싸여 피터팬으로 산다. 김정남에게도 유사성이 보인다. 숨겨진 여자 성혜림씨를 어머니로 둔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외롭게 자랐다. 서너살 때까지 김 위원장이 손수 오줌을 뉘어줄 만큼 귀여움을 독차지했다지만 어머니의 사랑만은 못했을 게 틀림없다. 태어나서 한 살반까지의 구순기를 잘 보내지 못하면 정신적으로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이기 십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인 터. 아직도 심리적 유아기에 머물러있는 그를 위해 북한에선 ‘소년 장수’라는 만화영화를 연장 방영하기까지 했다.

▷어린 날의 환상을 첨단 테크놀로지로 육화(肉化)하여 소비할 수 있게 만든 미국식 꿈의 공장이 디즈니랜드다. 동화 속 백설공주와도 악수할 수 있고 사람들은 모두 근심걱정 하나 없는 행복한 얼굴이다. 잘 짜여진 계획도시 같은 테마파크엔 짜릿한 스릴을 안겨주는 놀이기구부터 미래의 공상과학을 구체화한 투모로랜드, 세계의 볼거리와 쇼핑몰까지 종합선물세트처럼 없는 게 없다. 평범한 사람도 일상 탈출의 상쾌함에 즐거워하는데 ‘불량 국가’의, 그것도 아직 ‘세자 책봉’을 받지 못한 불안한 신분의 그가 얼마나 황홀한 현실 도피의 쾌감에 떨지 상상하면 안쓰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마이클 무어라는 괴짜작가가 저서 ‘멍청한 백인들’에서 농담처럼 편 주장이 “평양에 테마파크를 지어주자”는 거다. 김정남은 관리인을 시켜주고, 김정일을 위해서는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선사해도 좋다. 그런다고 해서 북한 경제를 살릴 수는 없겠으되 최소한 이 부자에게 일거리를 만들어주어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파멸에서 구할 수 있으리라는 게 그의 독설이다. 만일 북한에 경수로와 핵발전소 대신 놀이동산이 들어서고 그래서 그들이 핵을, 미사일을, 벼랑끝 전술을 포기하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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