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98…전안례(20)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7시 35분


색시의 아버지를 태운 가마가 지나가고, 색시의 오빠가 성큼성큼 걸어가고, 항아님을 맡은 색시의 네 언니들이 바람에 치마를 펄럭이고, 저고리 고름을 나부끼며 지나갔다. 행렬의 제일 끝에는 혼수감과 신랑의 친척에게 보내는 선물을 실은 리어커를 끄는 인부들이 따랐다.

구경하는 일본 여자들은 리어커에 실린 나무 상자에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고 수근거렸다.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에게는 비단 바지 저고리와 치마, 친척들에게는 버선, 그밖에는 찰떡, 사과, 배, 감, 막걸리, 양념갈비 등이 들어 있는데, 일본 사람들은 반짇고리나 경대, 인형 상자가 들어 있는 줄로만 알고 있다.

이나모리 카와는 허수룩한 기모노에 명주 오비(허리띠)를 멘 차림으로 길가에 서 있었다. 우철이 앞을 지나갈 때 아는 척을 해보았지만, 익숙지 않은 말을 타고 긴장한 우철은 고삐를 꽉 잡은 채 앞만 보고 있었다. 저 아이가…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어머니의 출산을 살펴달라면서 나를 업고 뛴 저 아이가, 아내를 맞다니…참 세월도 빠르다. 그 때 저 아이는 보통학교에 다닌다고 했으니까, 열 셋이나 그쯤이었을 게다. 일년, 이년, 삼년, 사년, 벌써 4년이나 지났다. 지금은 한 열 일곱 살쯤 됐겠지. 열 일곱이라면 시게사쿠의 셋째 아들 마사요시하고 같은 나이인데, 그보다 훨씬 듬직하다.

우리들은 조선 사람들과 융화하여 하나가 되고 싶은데, 광주에서는 반일 시위가 일어났고 상해와 만주도 시끄럽다고 한다. 밀양도 안전하지 않다, 상해 의열단에는 밀양 출신이 많다고 하니까, 어디에 숨어 있을지…. 이나모리 키와는 바람을 거슬러 앞으로 나갔다. 애써 이렇게 나왔으니 다리 밑까지 배웅하기로 하자.

색시를 태운 가마가 용두교를 천천히 건너기 시작했다. 가마 문이 열리고 색시의 손이 나오는가 싶더니, 빨간 종이가 하늘하늘 날아올랐다. 휭-휭, 바람은 액막이 종이를 색시의 친정집 쪽으로 날려보내고, 다리와 강에는 한 장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키와는 발치에 떨어진 빨간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이 종이는 틀림없이 액막이겠지, 그런데 핏자국처럼 보인다. 색시가 흘리고 간 핏자국…안 되지,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 키와는 자기 자신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을 느끼면서 인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신랑 신부의 행렬을 바라다보았다. 휭-휭 휭-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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