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천광암/˝돈 벌 공약은 없네˝

  • 입력 2002년 12월 11일 18시 22분


10일 주요 대선후보 3명의 경제·과학분야 TV토론에서 세 후보는 각계각층을 지원하는 공약을 경쟁적으로 내놨다.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후보는 “국내총생산(GDP)의 7%를 교육분야에, 3%를 과학기술분야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노무현(盧武鉉) 민주당 후보는 “청와대와 국회를 포함해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후보는 “교육비 병원비 주택비의 걱정에서 벗어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세 후보의 공약자료를 보면 이날 토론에서 말하지 못한 각종 지원 약속도 수두룩하다. 농업분야에서는 세 후보 모두 국가의 직접지불 확대와 부채경감, 복지개선을 공약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를 국가가 지원하고 교육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려는 원칙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과 재원(財源)이다.

한국은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157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썼다. 이 가운데 49조원은 정부가 내년부터 원리금을 갚아나가야 한다.

노령화 속도는 세계에서 전례가 없을 만큼 빠르고 출산율은 이미 선진국보다 낮다. 일할 사람은 줄어드는데 부양해야 할 사람은 많아진다는 뜻이다.

각종 연기금도 머지않아 국가재정을 압박할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공무원연금의 누적적자가 2030년엔 207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후보들이 공약을 실천하고 나라살림을 꾸리는 데 드는 돈은 기업과 가계(家計)에서 나온다. 그런데 가계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제2의 경제위기’ 진원으로 꼽힌다. 기업은 “선진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10년 뒤 먹고 살 것이 없다”며 고민한다.

이 때문에 이번 경제분야 토론에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키울 청사진을 보고 싶었던 국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돈을 쓰는 공약은 잘 보여줬지만 돈 벌 공약은 내놓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경제 위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국가와 기업, 가계의 주머니가 텅 비면 바로 위기일 수밖에 없다. 선거가 임박했다는 특수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TV토론의 ‘뒷맛’은 씁쓸했다.

천광암기자 경제부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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