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함준수/술자리 "위하여"…胃는 웁니다

  • 입력 2002년 12월 2일 18시 22분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끝자락에 다가섰다. 요즈음 통과의례처럼 거쳐야 하는 것이 바로 송년 술자리다. 제철을 만난 애주가들은 ‘술로 인해 몸이 상할지언정 벗의 마음은 상하게 하지 말라’는 말을 금과옥조(金科玉條) 삼아 부지런히 잔을 비우곤 한다. 그것도 혼자만 조용히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을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강권하는 재미도 만끽하면서.

술은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나쁘지 않다. 한두 잔의 반주(飯酒)는 심장에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해주는 한편,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폭탄주’ 같은 술잔 돌리기와 2, 3차로 이어지는 우리의 음주문화는 간뿐 아니라 위장에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다. 한국인의 암 발병률 중 1위가 여전히 위암인 것도 이런 음주문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한국인의 위장은 다른 나라 사람의 위장에 비해 더 많은 괴롭힘을 당하지 않나 싶다. 맵고 짠 음식, 높은 흡연율과 음주율은 위장장애를 가져오는 주범으로 꼽힌다. 사회환경면으로는 높은 인구밀도에 경쟁이 심해 안팎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위장에 크고 작은 부담을 받기 일쑤다. 이 가운데서도 과음은 위장장애와 직접 관계가 있다. 한 예로 술을 마신 후 메스꺼움이나 구토가 일어나는 것은 알코올에 의해 손상받은 위 점막이 반사적으로 구토 중추에 영향을 주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심하면 식도 점막이 찢어져 피를 토하기도 한다.

알코올은 위에 직접 작용해 위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위염이나 궤양을 악화시킨다. 폭음 후 급성 췌장염이 생겨 병원 응급실을 찾는 환자도 종종 있다. 이런 췌장염이 장기간 지속되면 인슐린 분비기능이 쇠퇴해 당뇨병이 생기기도 한다. 최근에는 과다한 음주가 여성에게 유방암을 일으키는 요인이 된다는 외국의 연구보고도 나왔다.

어떤 이들은 한국의 독특한 음주문화인 ‘술잔 돌리기’가 간염과 같은 전염성 질환이나 위염의 원인이 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옮기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을 갖기도 한다. 이 균이 만드는 독성 물질은 위 점막에 상처를 내거나, 심한 경우 위벽에 구멍을 내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체로 성인의 절반 정도가 이 균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감염자 중 약 20%는 속쓰림 소화불량 등 위염 증세가 나타난다. 배설된 균이 물이나 야채 등에 묻어 옮겨지는 경우가 가장 많고, 진한 키스, 찌개나 반찬을 여럿이 같이 떠먹는 한국의 독특한 음식문화, 술잔 돌리기 등도 감염경로로 추정된다. 이 중 술잔 돌리기로 인한 감염 위험은 사실 그리 높은 편은 아니지만, 이런 음주문화는 한 번쯤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송년에 술자리를 피할 수 없다면 후유증을 줄일 수 있도록 빈속에 마시거나 폭음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천천히 적게 들되, 틈틈이 물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단백질 안주를 적당히 섭취하는 것도 위장 보호에 도움이 된다. 분위기에 취하다보면 ‘술이 술을 마시는’ 사태도 발생하므로 무엇보다 스스로 절제하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하다.

함준수 한양대 의대 교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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