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문명호/러시아 마피아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8시 11분


영어의 올리가크(oligarch)는 과두제, 즉 특권적 소수가 지배하며 전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체제의 지배자들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과두제를 그리스 귀족정치체제의 타락한 형태라고 보았다. 올리가크는 현대의 민주 국가에서는 널리 쓰일 이유가 없는 단어인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같은 어원을 지닌 단어 ‘올리가르흐’가 지금도 사람들의 삶에 밀접하게 와 닿는 살아 있는 말이다. ‘신흥 금융 및 에너지재벌을 중심으로 한 소수 지배세력’ 정도의 의미를 지닌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올리가르흐들이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피아라는 말은 원래 1865년경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서 폭력적 범죄활동을 벌이면서 그 지역사회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던 사람들, 혹은 그들의 가문을 지칭하던 말이다. 그후 미국에서는 도박이나 악덕 고리대금업, 주류 밀매를 하던 범죄조직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시카고의 알 카포네가 대표적인 마피아 보스였다. 1970년대 구소련에서는 지하경제활동을 하던 범죄자들과 그들을 비호하던 관리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종류의 부패, 범죄집단을 일컫는 데 사용된다. ‘교통경찰 마피아’ ‘금융 마피아’ ‘옐친 마피아’ 하는 식이다. 그리고 올리가르흐도 마피아와 거의 같은 의미로 쓰인다.

▷러시아에는 현재 6200여개의 마피아 조직과 5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은 국영기업체 1500여개, 은행 400여개와 수만개의 기업을 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피아가 러시아 경제의 40%를 지배한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미국의 한 보고서는 약 200개의 조직이 동유럽, 북·남미,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58개국에서 마약매매 매춘 돈세탁 무기거래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의 규제로부터 거의 벗어나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프랑스의 일간지 르몽드는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 마피아의 포로’라고 한 전직 마피아 거물 조직원의 폭로 내용을 보도했다. 2000년 5월 푸틴이 집권할 무렵 창설된 세계 제2위의 알루미늄생산업체 루스알이 크렘린 권력층과 올리가르흐들의 합작품이며 푸틴은 이들 세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푸틴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이 손수 고른 후계자다. 취임 초기에 옐친 정권의 버팀목이었던 올리가르흐들에 대해 “국가경제를 좀먹고 있다”고 비난하며 이들과의 ‘전쟁’까지 벌였다. 그런 그도 결국 러시아의 거대한 부패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르몽드의 보도에 대한 그의 반응이 궁금하다.

문명호 논설위원 munm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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