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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26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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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13세 부동석(不同席)’의 구학제에 따라 중고교 동창은 남자들만의 모임이다. 서울과 지방의 과거 명문고교 동창 모임은 지금은 평준화가 돼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꽤 정치 바람을 탄다. TK에서 PK로 그리고 MK로 정권이 바뀌는 동안 서울의 호텔에서 열리는 지방 명문고의 총동창회 모임에 가보면 정권의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를 감 잡을 수 있었다. 현관대작들이 사람을 몰고 다니다가 정권이 바뀌면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 정권이 바뀌는 시기와 낙엽이 지는 계절이 겹쳐 올해 동창회는 경우에 따라 더욱 쓸쓸할 것이다.
▷대학 동창회는 ‘전국구’라 그래도 정치적으로 중립인 편이다. 이 나라 정치풍토에서는 지연 혈연과 함께 학연이 청소해야 할 ‘3악’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정치에 오염되지 않은 선진국의 학교 동창회는 모교의 후학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다. 하버드대는 총장추천위원회에 반드시 동창을 참여시키고 학교에 기여한 동창의 자제는 입학생 선발에서 우대받는다. 몇몇 미국 명문대학의 동창회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골프장에서 만나 부부 동반으로 골프 치고 칵테일 마시고 저녁 먹고 춤추고 헤어지는 동창회 모임이 많이 게시돼 있다. 회비는 50달러 정도.
▷치열한 경쟁으로 기진맥진한 인생 길에서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와 평생 우정을 나누는 것은 삶의 여유이고 낭만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학연에 고질적인 지연이 합쳐지고 정치까지 가세해 악성 종양이 된 것 같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대선 기간에 동창회를 일절 금지한다고 발표했다가 여론이 뒤숭숭해지자 한발 물러섰지만 대통령 후보자 등 정치인과 그 가족을 초대하면 선거법에 걸리는 모양이다. 이 나라의 후진 정치가 오염시킨 것이 어디 동창회 하나뿐이랴.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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