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의 영화속 IT세상]첨단장치 비웃는 '미스터 몬스터'…

  • 입력 2002년 11월 17일 17시 47분


나는 자동변속기 차량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손으로 직접 기어를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음악도 CD보다는 LP로 듣는 게 더 좋다. 가끔은 시대를 거꾸로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것이 더 따뜻하고 인간적인 삶이라고 혼자 믿고 있다. 이런 내가 정보기술(IT)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니 세상일이란 참 알 수 없다.

바야흐로 정보통신 혁명의 시대, 눈만 뜨면 새로운 기술이 쏟아져 나온다. 엄청난 변화의 속도는 현기증이 날 정도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 속도에 압도당한 채 ‘뒤지고 있다’는 열등감을 가슴 한구석에 담는 것도 당연하다.

이 시대의 보통 사람들이여, 한숨을 거두고 로베르토 베니니의 ‘미스터 몬스터(94년)’를 보라. 어수룩해 보이는 평범한 소시민이 연쇄살인범으로 몰려 경찰에 쫓긴다는 줄거리를 가진 코미디물이다. 지뢰밭처럼 곳곳에 웃음 폭탄이 깔려 있는 가운데 주인공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기발한 방법으로 테크놀로지를 조롱하는 장면이 숨어 있다.

주인공 로리스의 상대는 슈퍼마켓의 도난방지장치. 계산을 안 하고 물건을 내가면 경보가 울리게 되어 있다. 돈이 궁한 주인공은 첨단 장비의 철통같은 수비를 무력화시키며 일상적으로 생필품을 공짜 조달한다. 그것도 점원들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지극히 단순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어떤 방법인지 궁금한 독자는 가까운 비디오가게를 찾으시라. 훔치는 방법을 지면으로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주인공의 행색이나 무성영화 시대를 연상시키는 슬랩 스틱까지, 이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를 떠올리게 한다. 모던 타임스가 기계와 자본에 억눌린 노동자의 현실을 통해 눈물이 감춰진 웃음을 선사한다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유쾌하다.

IT칼럼니스트 redstone@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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