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선우/겉도는 개인워크아웃

  • 입력 2002년 11월 4일 18시 36분


개인의 채무를 정부가 조정해주는 개인워크아웃제도가 1일부터 시행됐으나 실제 현장은 겉돌고 있다. 이 제도는 최저 생계비 정도의 수입으로 살아가는 채무자들에게 상환기간 연장, 분할상환, 이자율 조정 등으로 경제 자립의 시간적 여유를 주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4일 서울 중구 명동 신용회복지원위원회를 찾은 김모씨(42)는 ‘서류 미비’를 이유로 접수를 거부당했다. 금융기관이 발급한 ‘부채증명서’가 첨부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곧바로 은행으로 달려갔으나 은행 담당자는 “은행 빚을 먼저 갚아야지 왜 워크아웃 신청을 하려 하느냐. 우리는 개인워크아웃에 관한 공문을 받은 적도 없다”며 오히려 면박을 주었다. 은행에는 ‘부채증명서’가 비치되어 있지도 않았다.

이날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개인워크아웃 신청을 하려 하자 은행과 카드사에서 ‘우리가 거절하면 위원회에 신청해도 안 된다’며 빨리 빚을 갚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글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이는 245만명의 신용불량자를 구제하기 위한 개인워크아웃제가 시행 초기부터 신용회복지원위원회와 금융기관의 ‘핑퐁식’ 업무처리로 삐걱대고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이 제도가 개인워크아웃제는 다섯 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2000만원 이하를 빌렸다가 지난해 9월 말 이전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을 구제하기 위한 것. 잘만 시행된다면 적잖은 서민들이 ‘신용불량자’의 오명을 벗고 정상적인 경제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제도가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현장에서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은 우선 금융기관의 소극성에 원인이 있다. 금융기관 직원들 대부분이 개인워크아웃제를 마치 ‘빚을 면제해주는 제도’쯤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고 금융기관의 채권추심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설자리가 없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들이다.

또 10월 초 각 금융기관의 협약으로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탄생했지만, 금융권은 여전히 이 위원회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제도만 만들어 놓고 쉽게 건망증에 빠지는 정부측에도 문제가 있다. 제도가 실제로 도입취지에 맞게 운용되는지, 금융기관들이 소극적인데는 그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는지 사후점검을 해야할 책임이 정부측에 있다.

김선우기자 사회1부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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