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현대인의 감춰진 욕망 속 '진실찾기'

  • 입력 2002년 11월 1일 17시 49분


김윤영
□루이뷔똥 / 김윤영 지음 / 304쪽 8000원 창작과비평사

어디에도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혹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도.

나는 측면을, 당신은 뒷면을, 누군가는 전면을 보았을지도. 어쩌면 시시각각 변이하는 대상에게서 단 한순간을 포착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작가는 ‘진실의 정체’를 다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시대의 어딘가에 서서 말이다.

표제작 ‘루이뷔똥’의 배경은 프랑스 파리. 전문매장에서 가방을 사서 일본 등지로 비싼 값에 넘기는 일을 하는 이들을 둘러싸고 일이 벌어진다.

한국에서 직장을 느닷없이 그만두고 고급 가방 수집상으로 일하는 ‘세미’와 시민권을 얻기 위해 외인부대에 지원했던 ‘판수’, 세미에게 온정을 베푸는 듯하지만 결국 사기를 치고마는 조선족 ‘영변댁’이 세 축을 이룬다. 서로 교차되어 나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자로 재단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현실의 표상이다.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지던 날, 세미는 사기를 당하고 영변댁이 비밀스럽게 모아둔 가방은 화염에 검게 그을린채 나뒹군다. 세계무역센터와 고급풍 가방은 같은 처지가 됐다.

세미는 생각한다. ‘타락한 자본주의의 상징, 갑자기 이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고 한국에 있는 좌파 떨거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최소한 그들은 뉴욕이 불바다가 됐다고 건배를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신자’라는 새댁의 영정 앞에서 다단계판매망으로 얽힌 이들의 면면이 벗겨지는 작품 ‘거머리’. 야학에서 열성적으로 자본론을 공부하던 신자의 눈빛과 ‘네트워크 마케팅’을 설파하는 눈빛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옛 야학 동료들을 찾아 다녔던 신자네 부부와 그들에게 실망한 동료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에 대한 경멸감을 숨기지만, 결국 영안실 밖으로 고함소리가 비어져 나간다.

‘음치클리닉에 가다’와 ‘풍납토성의 고무인간’에서 작가는 각각 학생운동을 하다 정신이 상한 인생과 일그러진 육체를 밝은 빛 아래로 끌어낸다. 형사를 피해 도주하다 화학약품 공장에서 자해를 한 ‘오빠’는 온통 화상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영화 속 외계인과 비교하며 ‘나 닮았지’하고 묻는다. ‘나’는 그런 오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학생들에게 ‘똥독’이라 불렸던 고등학교 수학교사의 죽음에 얽힌 미스테리를 다룬 ‘그때 그곳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나’와 가출한 학생을 찾아 추적작전을 벌이는 중학교 교사의 하루를 그린 ‘철가방추적작전’에서 작가는 학교문제를 유머스럽게 다룬다.

‘80년대적 현실과 90년대적 일상의 미묘한 절충점에 독자적으로 둥지를 튼’(창비신인상 심사평) 작가. 그의 첫 소설집에 담긴 8편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고른 재미를 준다. 여러 주변 인물들의 입을 빌어 달팽이 곡선을 그리며 중심으로 접근해 가는 솜씨에 그만의 매력이 있다. 8편의 작품이 각기 독특한 개성으로 자리 잡으면서도, 내면의 성찰에 머무르기보다는 당대의 사회상을 경쾌한 호흡으로 읽어 내고 있다는 점에서 한 권의 책으로 조화롭게 묶인다.

작가는 이 책에 수록된 ‘비밀의 화원’으로 1998년 제1회 창비신인소설상을 수상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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