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54…1929년 11월 24일 (5)

  • 입력 2002년 10월 22일 17시 57분


바람은 화롯불의 재에 숨을 불어넣어 아이의 탄생을 알리려 하였으나, 불기운이 약간 세졌을 뿐이라 단념하고 마당 쪽으로 불어들었다.

여자가 홀로 서 있었다. 겨울인데도 하얀 무명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허리춤을 끈으로 질끈 동여매었다. 우물가에는 커다랗고 넓적한 돌과 부엌칼과 끓은 물을 담은 냄비가 준비돼 있다. 둥둥둥 둥둥둥, 여자는 북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기가 뭘 두드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뭔가가 자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인지, 여자는 알 수 없었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은 여자와 바람뿐이었다. 북소리에 맞춰 바람은 휭-휭- 피리를 불고, 여자는 조심조심 앞으로 나아갔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여자의 얼굴에는 겨울이란 가면이 들러붙어 있었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여자는 마당 한 구석에서 알을 품고 있는 암닭 날개를 비틀어 잡았다. 꼬꺅- 꼬꺅-! 암닭은 자유를 얻으려고 다리를 버둥거렸지만 여자는 두 다리를 고무신발로 꽉 밟고, 왼손으로 날개를 잡고 오른 손으로 닭의 목을 비틀고,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암닭은 부리를 쩍 벌리고 허연 혀를 내밀었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암닭은 사지를 비틀며 여자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여자는 엄지 손가락으로 목구멍을 꾹 누른다. 둥둥둥 둥둥둥

휭-휭-, 암닭은 하얀 눈꺼풀을 닫고 축 늘어졌다. 여자는 다리를 잡고 머리부터 뜨거운 물에 담그고, 천천히 냄비 안 쪽을 쓰다듬듯 암닭의 몸을 한 번 두 번 흔들고는 손을 놓았다. 칼끝으로 옆으로 뒤집기도 하고 물에 푹 담그기도 하고. 다리를 잡고 물에서 꺼낸다. 넓적한 돌 위에 툭 올려놓고, 둥둥둥 둥둥둥, 여자는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암닭에 손을 뻗는다. 먼저 다리, 누런 껍질이 좍 벗겨진다. 다음은 날개, 옥수수 껍질을 벗기듯, 둥둥둥.

둥둥둥, 여자는 자기의 두 손이 마치 의지가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둥둥둥 둥둥둥, 목을 비틀었을 때 튀어나왔으리라, 항문에 내장이 축 늘어져 있다. 새빨간, 손바닥, 데었다, 뜨거움은 느끼지 못했는데. 바가지로 우물물을 퍼서 손바닥을 담그자, 시린 싸늘함이 단숨에 피부를 물들였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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