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땅의 딸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빼앗긴 얼굴´

  • 입력 2002년 10월 18일 18시 01분


탈레반 집권기간 내내 부르카는 여성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감옥’ 이었다. 탈레반 집권 초반인 1996년, 국제적십자사의 구호를 기다리는 부르카 차림의 대열을 헤치고 얼굴을 드러낸 한 여성이 서방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탈레반 집권기간 내내 부르카는 여성들을 세상과 단절시키는 ‘감옥’ 이었다. 탈레반 집권 초반인 1996년, 국제적십자사의 구호를 기다리는 부르카 차림의 대열을 헤치고 얼굴을 드러낸 한 여성이 서방 기자의 카메라에 잡혔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빼앗긴 얼굴/라티파 지음 최은희 옮김/283쪽 8000원 이레

아프가니스탄의 16살 소녀, 라티파는 행복했다. 기자의 꿈을 키우면서 대학시험도 잘 치러냈다. 인도영화를 비디오로 보고, 노래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며 찬란한 햇살아래 재재거리며 다니길 좋아한 소녀였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에 탈레반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것은 변했다. 노래, 영화, TV시청은 금지되었다. 비디오도 금지되었다. 호루라기는 물론 호루라기처럼 들리는 물끓이는 삐삐주전자도 사용이 금지되었다. 애완견 기르기도 금지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이상 라티파는 인간이 아니었다. 탈레반에게 여성은 돼지처럼 더러운 존재, 짐승보다도 더 열등한 벌레에 불과했다. 광신적인 탈레반 정권은 여성을 금기시하고 유린하는 것으로 그 정체를 드러냈다. 여성은 모든 것이 금지된 ‘금기사항’에 불과했다.

여성은 자신의 집에서 한 발짝도 나와선 안됐다. 학교도,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창 밖을 내다보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부르카라는 갑옷 같은 옷을 뒤집어쓰고 오로지 남자의 동행이 있을 때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부르카는 옷이 아니라 ‘감옥’이었다. 여성은 얼굴을 빼앗긴 죄수가 되었다. 눈 부위에만 그물창이 난 부르카를 입으면 여성들은 옆을 볼 수도 없었고 계단을 제대로 올라갈 수조차 없었다. 부르카를 입고 여성들은 새로운 감옥인 자신의 집에 유배되었다.

종교의 광기에 올라탄 탈레반은 인간의 권리를 신의 이름으로 짓밟았다. 탈레반은 납조각이 달린 채찍으로 지나가는 여자들을 아무 이유 없이 내리찍었고 여자들의 살점과 피조각이 거리에 흩어지면 웃어제꼈다.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이유만으로 여자들은 손가락을 잘렸다. 탈레반은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했고 그녀들의 성기는….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광기와 횡포와 잔혹이 ‘영원한 식민지’라는 여성의 몸에서 자행되었다. 수많은 여성들이 단 한 장의 판결문도 없이 잔혹하게 공개처행되거나 상상할 수 조차 없는 방법으로 살해되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라티파는 담담하게, 잔잔하게 이야기한다. 문화재를 불태우고 무수한 인명을 살해한 탈레반이 가장 잔혹하게 초토화시킨 장소야말로 바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몸이며 정신이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전쟁은 언제나 여성의 몸부터 유린했다. 그리고 여성의 정신을 고문했다. 마침내 여성들은 미치거나 살해된다. 이 예외없는 여성사를 라티파라는 소녀는 체험으로 생생히 전해준다.

‘빼앗긴 얼굴’은 읽는 사이 사이 책장을 덮게 한다. 내 자신이 인간이란 것이 무섭고 ‘여성’이란 사실이 두려워서이다.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하는 인간의 광기가 소름끼치고 그 첫 대상이 바로 나 여성일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떨려서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에게 황당한 금기와 경멸과 폄하, 그리고 겹겹의 부르카가 강요되는가 하는 생각 때문에.

그러나 마침내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는 희망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탈레반에 짓밟히면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또아리 틀며 일어나는 아프간 여성들, 그녀들의 절규가 온몸을 관통한다. 라티파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밀학교를 열고 배움을 시작한다. ‘배우는 것만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빼앗긴 자유와 권리를 위해 어린 라티파는 어른이 되고 목숨을 걸고 싸우기 시작한다.

“인생에는 언제나 끝이 있으니 복종할 필요는 없다. 복종이 내 삶의 조건이라면 나는 노예상태의 삶을 단호히 거부하리라. 황금 비가 내린다해도 나는 말하리라. 그런 비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라티파가 전한 탈레반의 극악무도한 횡포는 비겁한 우리의 각성을 요구한다. 라티파는 우리에게 요구한다.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며 무릎꿇고 살지 말고 차라리 서서 죽음을 선택하라고 - 또한 우리가 지금 공기처럼 값싸게, 물 쓰듯 마구 소비하는 자유와 권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빨리 알아차리라고 요구한다.

라티파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비극을 전 세계에 전했다. 인간에 대한 모든 기대를 저버리게 하는 상황속에서도 라티파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시간과 관용-바로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실마리라고 라티파는 보았다. 여성들이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여성은 한 가닥 신성한 빛’이며 ‘인류의 미래’이므로. 라티파는 이 책을 통해서 자유와 저항의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지금 라티파는 22살의 성인이 되어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다. 그녀는 ‘자유아프가니스탄 연합’의 일원으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전여옥 방송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