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AG/레슬링]“내 금메달 네게 줄수만 있다면…”

  • 입력 2002년 10월 3일 22시 25분


김인섭-정섭 ‘형제 레슬러’ 중 형인 김인섭(위)이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결승에서 키르기스스탄의 코보노프 다니아르를 상대로 안아넘기기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부산〓특별취재반
김인섭-정섭 ‘형제 레슬러’ 중 형인 김인섭(위)이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결승에서 키르기스스탄의 코보노프 다니아르를 상대로 안아넘기기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부산〓특별취재반
사상 첫 ‘형제 금메달’의 꿈은 무산됐다. 하지만 모두가 떠난 텅빈 매트 위에 형제의 진한 우애와 뜨거운 모정은 여전히 남았다.

3일 양산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체급별 결승전. 형 김인섭(29·삼성생명)은 66㎏급 결승에서 코보노프 다니아르(키르기스스탄)를 3-1로 꺾고 98년 방콕대회에 이어 2연패에 성공했지만 동생 정섭(27·삼성생명)은 이어 열린 84㎏급에서 마쓰모토 신고(일본)에게 연장 접전 끝에 3-4로 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정섭으로선 4년전 동메달에 이은 또 한번의 분루였다.

하지만 경기 후 땀에 젖은 모습으로 다시 만난 이들 형제는 서로 어깨를 끌어안고 축하와 위로 말을 나눴다. 이들 형제는 이날 금메달보다 더 중요한 것을 확인했다. 바로 뜨거운 형제애와 어머니의 깊은 사랑이었다.

동생 김정섭

인섭은 금메달을 딴 뒤 기뻐하기는커녕 “조금전 선수 대기실에서 정섭을 만났는데 괜히 내 경기를 봤다며 후회하고 있었다. 신경이 날카로워진 것 같다”며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인섭은 가슴을 졸이며 동생의 패배를 지켜봐야 했고 자신에게 쏟아지는 축하인사를 마다한 채 동생을 위로하기에 바빴다. 정섭도 이런 형에게 자신이 금을 놓친 아쉬움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두 아들의 경기 내내 응원석에서 염주를 돌리며 응원했던 어머니 최위선씨(49)는 여장부다웠다. 그는 “부모가 식당을 운영하면서 고생하는 것을 알고 묵묵히 운동에만 전념해 준 두 아들이 너무 대견스럽다”며 “비록 동반 금메달은 못 땄지만 너무 자랑스럽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아시아경기 2연패의 기록을 세운 인섭은 12월1일 지난 6년간 사귀어온 동갑내기 박진유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날 딴 금메달은 결혼을 앞둔 피앙세에 대한 최고의 선물이다. 체중조절 부담으로 58㎏급에서 무려 2체급을 올리는 바람에 불안감을 드리우기도 했던 인섭은 이번 승리로 심권호가 떠난 한국 레슬링의 간판스타로 부상했다.

방콕대회 동메달에 이어 다시 정상 문턱에서 주저앉은 정섭도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형과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한 그에게 이날의 패배는 새로운 출발점일 뿐이다.

양산〓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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