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정몽준식 화법

  • 입력 2002년 10월 2일 17시 51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도 단일화할 수 있다는 게 무슨 의미죠.”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이 1일 관훈클럽 초청토론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물론 이 후보와도 단일화가 가능하다”고 답변하자 이를 지켜본 정 의원 캠프의 일부 관계자들은 2일 되레 기자에게 이 발언의 진의를 물어봤다.

정 의원측은 “노 후보와의 단일화를 자꾸 묻기에 ‘왜, 이회창과는 안되느냐’는 취지로 맞받은 것일 뿐이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가능성도 없고, 그럴 의향도 없지만 부담스러운 화제를 피해가기 위해 별 뜻 없이 던진 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동안 정 의원에 대한 정면공격을 자제해온 민주당이 이 발언에 발끈하고 나섰다.

노 후보는 “정책이 전혀 다른 사람을 놓고 이 사람 저 사람과 전부 단일화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정책 없는 정치 아니냐”고 꼬집었다. 김현미(金賢美) 부대변인은 “원칙 노선도 없이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정치는 기회주의 정치이고 ‘연체동물’ 정치이다”고 비난했다.

정 의원은 2일에는 “한나라당 분들이 먼저 (신당에) 올 가능성이 있다”는 발언으로 한나라당을 자극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즉각 논평을 내고 “정치혁명을 하겠다는 정 의원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다. DJ의 양자답게 못된 것부터 배운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의원영입이 지지부진하니까 초조한 나머지 한나라당 교란용으로 내놓은 발언이란 비판이었다.

그러나 이런 ‘과감한’ 정치적 발언과 달리, 정 의원은 자신의 재산문제에 관해서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신중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관훈클럽 토론에서도 그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아산 증자에 277억원이나 투자한 데 대해 “소액주주라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또 선친인 정주영(鄭周永)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의 증여 상속세 규모에 관해서도 “수학공부를 못해 숫자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얼버무렸다.

물론 정 의원의 ‘말’에 따른 결과는 그 자신이 부담할 몫이다. 그러나 ‘투명한 정치’를 내걸고 출발선을 겨우 지난 정 의원이 애매하고 불투명한 발언으로 계속 ‘뒷말’을 낳을 경우 새로운 정치문화를 기대하는 유권자들에게 또 하나의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까 걱정이다.

박성원기자 정치부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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