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망국적 막가파 정치´

  • 입력 2002년 9월 18일 18시 35분


한국의 정치가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국민의 화합보다는 대립을 조장하는 분열의 정치에 있다. 분열의 정치는 한국 정치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고비용 저효율 가운데서도 최악의 저효율이다.

민주사회의 정치는 그 구성원 사이의 이해대립과 분쟁을 평화적으로 조정 해결하고, 국가정책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그 소임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정치는 정치인끼리는 물론 일반 국민 사이에도 분열 반목 알력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는 국민 분열, 국론 분열의 파괴적인 저질 정치 바로 그것이다.

▼갈등 분열 조장 후유증 유발▼

요즘 정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막가파식 정치행태는 정치가 명분과 도덕성을 상실하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막가파식 싸움질이 이대로 계속되면 장차 심각한 후유증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사회적 갈등의 해결수단이어야 할 정치가 오히려 갈등의 원천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주화 이전까지는 독재 대 반독재의 대결로 정치가 사회갈등의 원인이 되어 왔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간, 계층간, 이념간, 세대간 갈등과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정치가 다시 국민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지역 갈등의 희생자여서 국민의 정부 탄생은 고질적인 지역 대립을 극복할 절호의 기회였다. 김 대통령 역시 취임 후 “과감한 정치개혁을 통해 갈등과 분열의 정치를 타파하지 않고는 더 이상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과감한 정치개혁은 말에 그쳤고, 갈등과 분열의 정치가 심화되었을 뿐이다.

김 정권의 편파 인사와 측근 의존, 그리고 패거리주의는 분열과 부패의 정치를 낳았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김 대통령이 힘의 논리를 신봉하는 구시대적 권력정치를 답습한 데 있다. 김 정권은 집권 초기 김종필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안이 난항을 거듭하자 야당과의 대화정치 대신 야당 의원 빼내기를 통해 인위적으로 여당을 원내 다수당으로 만들었다. 물론 여기에는 극단적인 대여 투쟁을 마다하지 않은 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그러나 정권 출범 때부터 독단과 오기로 대화정치의 기반을 붕괴시킨 것은 국정 운영의 최종 책임자인 김 대통령의 과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김석수 총리지명자를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서리로 임명한 것도 김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정부는 정부조직법상 총리 궐위의 경우는 직무대행을 둘 수 없다고 말하고 있으나, 최근 밝혀진 바로는 재작년 5월 박태준 총리가 재산문제로 사표를 제출해 수리된 다음 청와대는 당시 선임(先任) 장관이던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을 총리직무대행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4일 뒤 김 대통령은 이한동 총리서리를 임명함으로써 이 장관의 직무대행은 단기간으로 끝났다. 최근 김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이런 선례조차 잊었는지 총리직무대행을 두지 않고 총리서리 임명이라는 위헌적 처사를 계속 강행했다.

언론의 비판을 참지 못하고 힘으로 이를 제압하려 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결여된 이 정권의 치명적인 과오였다. 김 정권은 방송을 우호세력화하고 비판적인 신문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동원했다. 그 결과 신문과 방송이 서로 싸우고,신문끼리 싸우고, 언론인이 언론인에게 화살을 날리는 기막힌 언론 분열의 시대가 열렸다. 비판과 욕설을 구별하는 능력, 심지어는 사실 확인의 능력조차 없는 사이비들이 판을 치는 가운데 일부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는 대신 비판 언론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아 이른바 ‘홍위병’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나라 장래 토론하는 수준돼야▼

이 정권 들어 결정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킨 것은 대북정책이다. 김 정권은 초당적인 입장에서 원칙있는 햇볕정책을 추진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무원칙하게, 그리고 정략적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이 때문에 우리 내부의 이념적 분열과 상처는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고 아무나 ‘반통일세력’으로 몰아붙이는 못된 풍조가 생긴 것은 망국적인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이제 3김의 퇴장과 함께 분열의 정치를 마감하고 통합의 정치를 펼 때가 왔다. 독단, 패거리, 사생결단, 저질 대신 민주적 신념, 대화와 타협, 그리고 품격을 바탕으로 하는 희망의 정치를 국민은 바라고 있다. 우리 정치도 이제는 국가와 민족의 앞날과 이상을 토론할 수 있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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