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종범/´부동산 평가´ 단일화를

  • 입력 2002년 9월 16일 18시 18분


정부가 범하는 가장 큰 오류 중 하나는 특정 상품의 가격 변동폭이 클 경우 세금만 조정하면 가격변동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변동의 원인을 제대로 짚어보기도 전에 세금을 조정하는 것은 더 큰 폭의 가격변동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특히 부동산처럼 공급을 단기간에 조정하기 불가능한 상품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행자-건교-국세청 제각각▼

바로 이 점에서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을 때 정부가 했던 일들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모든 부처가 앞다투어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었다. 부동산 거래와 관련된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감면 혜택을 부여하는 등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조처를 취하다가 결국 분양권 전매허용으로까지 이어졌었다. 그 결과, 지금과 같은 부동산시장 과열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부처가 부동산 시장 과열방지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국세청은 학원과 부동산중개업자에 대한 철저한 세무조사를 대책으로 내놓았고, 건설부는 분양권 전매 금지조처를 취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최근에는 국세청과 행정자치부가 상호협의 없이 부동산 대책을 제시한 결과, 갑자기 재산세가 최고 90%나 오르는 믿기 힘든 일이 생겼다. 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값이 폭등했는데도 강북지역 아파트의 재산세가 강남에 비해 몇 배나 된다는 문제가 지적되자, 행정자치부는 투기과열지역에 대해 적용되는 기준시가 가산율을 올리는 조치를 취했고, 국세청은 이와는 별도로 기준시가 자체를 23% 인상하면서 발생한 문제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의 원인을 두 부처간 상호협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데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동일한 부동산에 대한 가격을 각 부처가, 그리고 각 세목이 다르게 평가하고 있다는데 있다. 하나의 부동산에 대해 국세청은 양도소득세의 과표로 기준시가를 적용하는 반면, 행정자치부는 재산세와 종합토지세 같은 지방세의 과표로 과표시가표준액을 사용한다. 또한 건설교통부는 공시지가를 적용한다. 이들 세 부처는 매년 별도로 토지나 건물 평가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그런데도 공시지가는 시가의 80% 정도, 그리고 과표시가표준액은 이런 공시지가의 30%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제 부동산가격이 과표로 반영되기를 기대하기는 애당초 힘들게 되어 있다.

따라서 해법은 우선 부동산에 대한 평가체계를 단일화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그리고 단일화된 평가기관에서 과표를 시가에 근접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를 통해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인한 자본이득을 세금으로 상당부분 환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투기의욕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보유단계의 과세를 강화한다는 것을 부동산 세제 발전의 기본방향으로 설정해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이를 실현시키지 못하는 이유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초자치단체 세목으로 되어 있는 재산세와 종합토지세를 강화하면 땅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서울 강남구와 같은 기초자치단체의 세수입이 더욱 커져버리고, 이에 따라 자치단체별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기 때문이다. 결국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그리고 기초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간에 세금과 예산, 그리고 행정업무의 조정을 따로따로 생각해서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이제는 세금-예산-행정의 3자를 함께 보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즉, 세목조정을 통해 생기는 지방세수의 변동을 예산과 행정업무의 조정을 통해 상쇄시키려 노력할 때 비로소 어떠한 변화도 수용할 수 있다.

▼세금 예산 행정 함께 고려해야▼

그러나 현행 시스템은 국세는 재정경제부가, 그리고 지방세는 행정자치부가 관장하고 있다. 또 중앙정부 예산과 중앙과 지방재정간의 조정은 기획예산처가, 그리고 지방정부의 예산은 지자체가 각각 담당하고 있다. 심지어는 청와대 안에서조차 중앙정부 관련 세금과 예산은 경제수석실에서, 지방정부 관련은 정무수석실에서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혼란을 계기로 세금-예산-행정의 3자를 동시에 고려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이해관계를 원활하게 조정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협의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상응하는 새로운 정부조직 구조를 만들 것을 제안해본다.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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