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23…백일 잔치 (8)

  • 입력 2002년 9월 12일 18시 34분


“인서네 집에서는 새하얀 비누 쓴다. 갈색 비누하고 달라서 젖어도 물렁물렁해지지 않고, 거품도 아주 잘 나고 냄새도 아주 좋더라”

“한 번 더 탕에 들어갔다가, 몸 씻자”

희향은 소원과 함께 탕에 들어가자, 탕 안에 있던 삼문동 영숙이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백설기 떡 받아주셔서 참말로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아들 수명이 1년 길어졌습니다.”

영숙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깨와 어깨가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와 희향의 귀에 속삭였다.

“봐라, 옆에 착 들러붙어 있다”

“네?”

“모르나? 저 여자다, 자네 남편의…”

영숙 아줌마가 그 여자에게 뭐라고 속삭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머리를 감다가 말고 얼굴을 들면 이상하게 여겨진다. 여자는 천천히 머리에서 물기를 빼고 수건으로 둘둘 말고서 놋대야에서 갈색 비누를 꺼냈다.

“어머니, 뜨겁다”

“참아라”

“하양, 검정,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황록, 황토, 주황, 회색, 분홍색, 하늘색. 인서가 갖고 있는 잠자리 크레용은 열두 가지 색이다”

“…그렇나”

“스물네 가지 색도 있다더라. 무슨 색이 들어 있을라나. 나, 여섯 가지 색이라도 좋으니까 갖고 싶다. 여섯 가지 색이면, 빨강, 노랑, 초록, 주홍, 분홍, 하늘색. 어머니, 듣고 있나?”

“듣고 있다. 빨강하고 노랑하고 초록 아이가?”

“그건 삼색이지. 답답해서 안 되겠다! 나갈란다!”

두근, 두근, 목 위에서 머리가 흔들린다, 우근의 머리처럼 흔들 흔들. 뜨겁다, 가슴이 무겁다, 숨이 답답하다, 폐를 짓누르는 것 같다. 우연? 어떻게? 두근, 두근, 어떻게 이런 우연이? 두근, 두근, 저 여자는 나를 알아보았나? 심장에서 피가 부글부글, 뜨겁다! 눈에 빨간 안개가 어린다, 빨갛고 뜨거운 물이 늪처럼 부글부글 하고. 빨강, 하양, 검정, 파랑, 빨강! 빨강! 빨강! 뜨겁다! 이대로 숨을 그만 쉬고 물 속에 얼굴을 가라앉히고 싶다, 아니, 큰 소리로 웃어주고 싶은 건지도, 저 여자와, 그 사람과, 나를.

“어머니! 언제까지 들앉아 있을 건데?”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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