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재정형편 어쩌다 이 모양 됐나

  • 입력 2002년 8월 28일 18시 41분


올해 세제개편안을 보면 나라 살림이 눈에 띄게 어려워졌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해마다 단골로 담겨있던 근로소득자에 대한 세금혜택이 사라지고 기존의 조세감면마저 폐지하거나 축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내년 재정사정이 오죽이나 어려우면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부가 서민생활 안정을 위한 배려조차 인색했을까.

재정사정의 악화는 본란에서도 여러번 지적했듯이 예견되었던 일이다. 아직 상환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공적자금 손실분 69조원 중 49조원을 재정에서 앞으로 25년 동안 매년 2조원씩 갚아야 하고 이자도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다 사회복지지출은 눈덩이처럼 늘어나 나라살림사정은 갈수록 힘들어지게 됐다.

재정수입도 나아질 조짐이 별로 없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의 6%대에서 4% 수준으로 떨어져 세수증가를 예상하기 어렵고 정부 보유주식도 팔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내년에 8300억원의 세금감면을 줄이고 올 연말로 끝나도록 되어있는 각종 비과세 조치를 연장하지 않거나 감면폭을 줄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조치로 이해가 간다.

하지만 아무리 재정형편이 어렵더라도 서민생활의 안정이나 저축장려, 투자촉진 등 조세정책의 수단마저 포기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복잡한 조세감면은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우선순위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법인세 연결납세제도의 도입이 연기된 것도 아쉽다. 새로운 제도도 합리적인 경우라면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미국 영국 등 주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거의 다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당장 세수감소를 이유로 무조건 거부해선 안 된다.

외환위기에서 비교적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과 기업부문의 부실에 비해 그나마 재정이 건전했던 덕분이다. 재정형편이 외국에 비해 낫다고 하지만 앞으로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세수증대는 물론 중요하지만 재정지출의 효율을 높이는 노력도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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