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사람이 자연이다

  • 입력 2002년 8월 26일 17시 52분


도시인들은 휴가를 떠나도 도시를 가지고 간다. 탁 트인 자연과 모처럼의 여유, 단순한 생활이 그립다면서도 자가용에 린스와 샴푸, 두루마리 화장지까지 바리바리 싣고 산으로, 바다로, 시골로 가서는 “도시와 똑같네” 하고 불평을 한다. 생활의 이기(利器)들을 가져가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민박집 앞 편의점을 24시간 들락거리고, 목에 걸린 휴대전화로 끊임없이 통화를 한다. 그리고는 일상의 찌꺼기 속에 지쳐 돌아오며 중얼거린다. 어이구 피곤해. 그저 집 떠나면 고생이구먼.

▷구 소련의 지구화학자 블라디미르 베르나드스키는 70여년 전에 이미 “과거 지진이 땅덩어리 형태를 바꾸었고 강이 미래의 지구를 바꾸는 것처럼, 사람 자체가 지질학적 변화 요소가 되고 있다”고 예견했다. 사람이 자연의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의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에서다. 내가 휴가지까지 몰고 간 자동차는 기상 이변을 일으키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를 잔뜩 내뿜고 왔다. 내가 마구 뭉쳐 버린 화장지를 만들기 위해 인도네시아 울창한 삼림 속의 나무 몇 그루는 사라진 지 오래다. 외계인들은 인류를 화산과 동격의 지구환경 변화 요인으로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6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개막된 지구촌 최대 환경회의의 정식 명칭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다. 나무를 베더라도 그만큼 다시 심어서 다음 세대가 쓸 수 있도록 해놓는 게 지속 가능한 개발이다. 세계야생동물기금에선 ‘제대로만’ 쓴다면 현재 삼림의 20%만 가지고도 전 세계의 나무 필요량을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이익만 따지는 인간의 욕망이 처녀림을 온전히 둘 리 없다. 더구나 이쪽은 원하는 건 뭐든지 황금으로 바꿀 수 있는 테크놀로지를 지닌 권력집단이고, 저쪽은 가진 게 말 못하는 자연뿐이라면.

▷자연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난했던 우리는 일단 개발부터 해서 잘살게 된 뒤에 환경보호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배워 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는 법. 좀 더 편하고 크고 좋은 것만 찾게 될 뿐 이만하면 됐다는 시기는 결코 오지 않는다. 남아공에 174개국 대표가 모여 환경, 인구, 물, 빈곤 문제를 풀기 위한 선언문을 채택한다지만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사람이 바로 자연이고, 환경이 곧 나 자신이라는 사고의 전환은 그래서 필요하다. 이게 어렵다면 보험을 든다고 여기는 것도 괜찮다. 내가 조금 참아서 우리 아이들이 잘살 수 있다면 지금 불편한 것쯤이야 못 견딜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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