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부가 조장한 재건축 혼란

  • 입력 2002년 8월 20일 18시 28분


강남 아파트값 폭등을 몰고 온 재건축 아파트들의 안전진단이 허위나 부실 투성이였다는 조사결과는 건설행정의 난맥상을 잘 보여준다. 고치면 더 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건축을 통해 아파트값을 올리려는 주민들의 영향을 받아 부실 판정을 내린 행위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

재건축 추진 아파트의 70%가 재건축할 필요가 없었다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심사를 의뢰한 92건의 아파트 가운데 67건이 재건축 대상이 아니거나 고쳐 쓸 만했고 재건축을 해야 할 아파트는 6건에 불과했다. 외국에선 100년까지 쓸 수 있는 아파트를 우리는 왜 20여년 만에 부수어야 했는지 이해가 간다.

재건축 안전진단을 엄격히 하겠다는 것은 옳은 방향이긴 하나 실효성에는 여전히 의문이 든다. 구청장에게 있던 권한을 광역단체장에게 넘기고 서울시의 사전평가를 거치도록 한다지만 제도만 바꿔 해결될 일이 아니다. 광역단체장도 주민들의 표를 의식하기는 마찬가지이고 극성 민원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공정한 사전평가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서울시의 이번 조치를 신뢰하기는커녕 언젠가는 재건축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어 집값 상승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오락가락해 온 정부의 재건축 정책이 언제 또 변할지 모른다는 심리 때문이다. 현 정권 들어 경기부양을 위해 아파트 재건축을 유도할 때 이미 오늘의 사태는 예고된 것이었다. 정부가 그렇게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경기를 띄워 경제를 회복시키겠다던 발상이 자초한 일이다.

불경기에는 부실판정을 남발하고 아파트투기가 일면 안전기준을 강화하는 ‘고무줄 평가’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지나치게 낡은 아파트의 재건축을 무리하게 막는 것 역시 옳지 않다. 안전진단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함으로써 진짜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더 큰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100년 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집을 짓도록 하는 근본대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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