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이것이 ‘DJ외교’ 인가

  • 입력 2002년 7월 31일 18시 55분


김대중 정권의 안살림이 권력비리와 내부갈등으로 요동치는 동안 바깥살림도 시종 무기력과 혼돈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장상 총리 임명동의안 부결이 보여주듯 내치(內治)가 그 모양이니 외치(外治)인들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2년 전 중국과의 마늘협상 이면합의 내용이 터지자 정부는 불과 9일 만에 마늘가격 안정 등을 위해 5년간 1조8000억원을 투입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무려 1조8000억원이라니. 급한 불 우선 끄고 보자는, 응급처방에는 도가 튼 것 같다.

▼끌려다니다 뒤처리 급급▼

우리 공산품을 수출하려면 중국 농산물도 사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마늘협상은 그런대로 노력한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문제는 중국 마늘의 수입 허용이란 이면합의를 떳떳이 밝히지 않은 데 있다. 그런데 더 큰 실수는 ‘사건’이 터지고 나서다. 외교란 상대방이 있는 법인데, 당시 이면합의를 밝히지 않은 것은 중국측도 내부적으로 상부 보고체계의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하튼 문제가 불거진 이상 당시 쌍방의 입장에서 공개할 것은 공개하고, 또 정부가 어떤 조치를 취했던 것인가를 제대로 밝혔다면 지금과 같은 궁지에 몰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관련부처는 문책의 불똥을 피하느라고 ‘우리는 몰랐다’는 식으로 떠넘기기로 일관했으니, 이런 목불인견(目不忍見)이 또 어디 있는가. 더욱이 보고가 없었다는 당시 청와대 비서진의 말은 정말 고약하다. 이것이 국정을 책임진 정권의 모습인가. 그런데 이번 사건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한국측의 그런 어지러운 모습을 보며 중국측은 어떻게 생각했겠는가. 과연 한국은 앞으로도 협상 파트너인가라고 되물었을 법하다. 일본과의 쌍끌이 어업 협상, 러시아와의 명태 꽁치 협상, 중국과의 외교관 폭행 분쟁에서도 우리는 빠뜨리고 놓치고 밀리고 또 밀렸다. 판판이 깨지기만 했으니 어쩌다 우리의 바깥살림이 이 모양이 됐는가.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가.

김 대통령은 외교 안보분야 식견에 나름대로 자부심을 피력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정반대로 무기력뿐이다. 우선 미국과의 관계가 대단히 편치 않다. 요즘 우리 외교 당국자들은 입만 열면 미국과 북한간의 대화를 떠올리며 강조한다. 거의 간청하다시피 하는 수준이니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마디로 햇볕정책 때문이다. 이 정권이 명운을 건 햇볕정책이지만 최대 지원국인 미국의 입장은 냉랭하다. 햇볕정책이 외형적으로나마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서는 미국이 한 수 거들어 주는 것이 이 정권엔 절실하다. 그런데 미국은 외형이 아니라 햇볕정책의 내용을 중시하고 있으니 양자의 입장이 서로 엇갈릴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관념적 햇볕정책에 미국의 반대입장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를 ‘햇볕’으로 포장하려 하니 삐걱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논리를 조목조목 짚어 뒤집지도 못했고, 정부의 논리로 설복시키지도 못했다. 외교무대에서는 ‘예스’보다 논리를 갖춘 ‘노’를 더욱 평가하고 존경한다. 외교논쟁에 임하는 논리가 너무나 허술한 현 정권의 무능과 자질 부족이 드러난 셈이다.

지금 한반도 문제에서 당사자인 우리는 지원 역할에 밀려 있으며 주도 역할은 미국에 넘어간 형국이다. 이쯤 되니 할말이 없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당장 우리 안보와 직결된 것이 아닌가. 남북대화를 한다면서 한 번이라도 그 문제를 당당히 북측에 제기한 적 있는가. 햇볕정책이 깨질까 노심초사해 이리저리 피해 간 것 아닌가. 나아가 한국과 한반도의 역할이 왜 주변국들에 중요한 것인지를 부각시키는 외교전략을 한번 검토라도 한 적 있는가. 이런 말 꺼내는 이유는 강대국 사이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외교뿐이며, 수시로 외교적 이슈를 만들어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공격적 외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조용히 앉아 기다리는 외교는 죽은 외교다. 10년 후 한반도를 상정한 외교정책 문서가 한 건이라도 있는가. 결과적으로 치열하고 험난한 생존외교보다 의전외교나 노벨상외교가 앞섰고 그런 분위기가 쌍끌이, 명태, 꽁치, 마늘 협상에서 나타난 것이 아닌가.

▼4강외교 곳곳서 밀려▼

외교관 추방사태로까지 갔던 러시아와의 관계는 차관상환 문제까지 끼여 불안정한 상태며 중국과도 탈북자 문제로 언제 다시 삐끗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파트너십을 강조하지만 일본과는 역사교과서 문제로 긴장 상태다. 4강 외교 어느 곳에서도 제대로 정리되거나 안정적인 모습을 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4년 반 동안 5명의 외무장관과 5명의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 바뀌지 않았는가. 또 그들과 주요 외교진용이 모두 적재적소의 인물인가도 의문이다. 집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개혁, 개혁 하더니 이런 ‘외교개혁’인가.

최규철 논설주간 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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