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막스 카스/한반도 흡수통일은 안된다

  • 입력 2002년 7월 31일 18시 51분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결과로 한국과 독일은 각각 분단의 운명을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다.

독일이 한국과 다른 점은 두 가지다. 첫째, 지리적인 차이다. 독일은 유럽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 서쪽과 동쪽을 사회 정치 문화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다. 베를린은 1920년대 유럽 지식사회의 중심이었다.

또 하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독일에 의해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수백만명이 희생됐으며 600만명의 유대인들이 1938∼1945년 학살됐다.

▼통독 12년…옛 동독엔 좌절만▼

독일의 정치 경제적인 가능성을 고려해 1945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들은 2차 세계대전을 야기한 1918년의 베르사유조약과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고민했다. 독일은 1945년 5월 8일 연합군에 항복하면서 전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에 의해 4개 지역으로 분할 점령되었다.

그러나 제2차 대전 후 서방 진영과 소련의 냉전이 심화됨에 따라 미국 영국 프랑스 등 3개 서방 강대국들은 점령지역을 하나로 통합해 1949년 9월 7일 독일연방공화국을 만들어냈다. 서독이 그것이다. 이어 소련도 1949년 10월 7일 자기 점령 지역에 독일민주공화국이라고 불리는 동독을 창출해냈다.

서독은 자체적인 전문기술에 미국의 경제지원 및 마셜플랜을 접목해 1948년 이후 전례 없는 경제적 성장을 계속했고 이는 서독의 민주주의를 안정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동독의 상황은 달랐다. 동독 정부는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로 구성되는 경제상호원조회의(COMECON)에 가입함으로써 중앙통제적 계획경제에 종속됐다. 1953년 이후 동독 근로자들은 더욱 소련에 억압됐고 점차 서독으로 망명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상황이 악화되자 소련과 동독 지도자들은 탈동독을 막기 위해 마침내 1961년 베를린장벽을 설치하기에 이른다. 동서독의 완전한 분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세계적인 위기감은 더욱 고조됐다.

두 독일의 국경을 갈라놓은 이 베를린장벽을 넘는 것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으려던 수백명의 동독인들이 죽음을 당했다. 그러나 이 장벽은 동서독 관계를 ‘정상화’하는 데 일부 기여한 측면도 있다. 1950년대까지 통일에 대한 강한 염원을 표했던 서독인들은 이후 현실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1980년대 소련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개혁 개방 정책인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되자 독일의 통일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동유럽국들이 민주화를 추진하고 공산주의가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국경이 점차 개방되고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등을 통해 서독으로 이주하는 동독인들의 수도 더욱 늘어나기 시작했다. 1989년 동독의 정치 기반이 흔들렸고 그 뒤는 알려진 대로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1989년 11월 28일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의 놀람과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유명한 10단계 프로그램(10 point program)을 독일 의회에 제출했다. 독일과 유럽의 분열 해소와 유럽 통합의 완성을 위한 독일 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거센 항의와 국제적 반발에 맞서야 했지만 동독 인민회의는 1990년 10월 3일 서독기본법 23조에 의거해 동독의 서독 편입을 확정해 서독으로의 흡수통일을 스스로 결정했다.

이는 서독의 콜 총리가 당시의 세계 정세를 적절히 이용하고 절호의 기회를 잡아내 동독과 세계를 설득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동독과 서독은 모두 열의를 갖고 통일에 응했다. 많은 이들은 통일독일이 유럽의 중심이자 또 하나의 슈퍼파워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몇 년만 지나면 동독 또한 서독의 경제적 부유함을 그대로 이어받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옛 동독, 시장경제에 적응못해▼

그러나 12년이 지난 지금, 옛 동독에서는 실망과 좌절감이 팽배하다. 1600만 인구의 동독이 6400만 서독의 정치체제에 흡수되는 것은 그다지 예측 불가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40년간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단절됐던 양측의 이질감은 아직도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큰 차이는 경제적인 데 있다. 옛 동독의 실업률(20%)은 서독(7%)보다 훨씬 높으며 옛 동독에 기본시설 등 투자가 이뤄졌다고는 하지만 중앙통제적 계획경제에 익숙한 옛 동독의 경제시스템은 10년이 지나도 시장경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이 같은 경험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문제일 것이다.

막스 카스 세계정치학회 수석 부회장·독일 브레멘대 인문사회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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