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훈/DJ 內治서 손떼라고?

  • 입력 2002년 6월 27일 18시 40분


6월 내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었던 축구축제는 끝나가고 있다. 우리는 뿌듯한 월드컵 이야기꽃 속에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축구 이야기 뒤에 이어지는 우중충한 화제는 바로 축구와 정치의 극명한 대조이다. 온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한국축구의 도약과 지지부진한 구태를 반복하는 한국정치의 모습만큼 선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도 흔치 않다.

▼빗나간 민주당 차별화 전략▼

민주당과 노무현 후보는 떨어진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지의 반전을 위해 노 후보와 민주당이 빼든 칼은 우리 유권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다. 역대 여당 후보들이 반복해 왔던 바 그대로 노 후보 측은 요즘 현직 대통령을 비난하고 연계고리를 끊는 이른바 ‘차별화 전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태평화재단의 해체와 김홍일 의원의 탈당을 요구하는가 하면, 심지어 일부에서는 대통령에게 내치는 그만두고 외교국방에만 전념하라는 주문까지 내놓고 있다.

특히 임기가 남아 있는 대통령에게 국정의 일부를 포기하라는 것은 직무유기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민주당과 김대중 대통령이 한 배를 타고 있었다고 해도 대통령은 민주당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국민의 대통령이며, 임기 중 헌법과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주어진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의무와 책임을 지닌다.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는 것과 임무를 일부 포기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민주당과 노 후보의 사정이 아무리 다급하다 해도 대통령에게 내치에서는 손을 떼라고 요구하자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망각한 ‘초헌법적’ 발상이며, 정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조차 잊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한다.

민주당의 이러한 식의 김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은 바로 노풍에 대한 자기부정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노 후보가 김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그 같은 차별화는 노 후보가 과거의 여당 후보들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기성정치인들의 행동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난 봄부터 수개월간 탈지역, 탈3김, 탈기성정치를 내세우며 수많은 유권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노 후보의 신선함은 어디로 갔는가. 노풍은 어디로 사라졌으며 노 후보는 왜 차별화에 매달려야 할 만큼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는가.

그 까닭은 민주당과 노 후보가 새로운 실험이 갖는 양면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에 있다. 모든 새로운 실험은 파괴와 창조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한편으로 옛 질서를 공격하고 해체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원칙에 따라 새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 바로 새로운 실험이다. 한국축구가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의 악습을 타파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론 새로운 축구 방식을 성공적으로 구축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노 후보는 새로운 정치가 갖는 ‘해체‘와 ‘창조‘의 두 얼굴 가운데 주로 전자에 기대어 왔다. 영남 출신의 노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었을 때 수많은 유권자들은 지역주의의 극복 가능성에 환호했다. 또한 서민적인 분위기와 기성의 권위를 거부하는 그의 태도는 젊은 유권자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 그 같은 파괴의 신선함마저도 크게 퇴색하고 있다. 대통령후보에 당선된 노 후보가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해서 보여준 태도는 지역주의 해체의 의지를 의심케 하는 것이었다. 또한 6·13선거 패배의 책임을 청와대에만 돌리는 자세는 과연 과거식의 ‘책임 떠넘기기’ 정치의 극복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했다. 최근의 차별화 전략은 이러한 퇴색이 마침내 심각한 수준에까지 왔음을 말해준다.

▼구태 깨뜨리는 도전 보여야▼

이제 민주당과 노 후보는 실로 중대한 이중적 기로에 서 있다. 이때 가장 먼저 선택해야 할 점은 올 봄에 불었던 노풍을 되살리기 위해 지역주의, 3김정치, 기성 권위의 파괴와 해체라는 전략으로 복귀할 것인가, 아니면 김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통해 더 쉬운 길을 계속 갈 것인가의 문제다. 쉬운 길의 선택이 지지도의 회복을 보장할 것인지도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길이 새로운 정치를 포기하는 길임에는 틀림없다.

한편 쉬운 길을 포기하고 기성질서의 해체와 도전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또 하나의 어려운 과제가 노 후보를 기다린다. 기성질서에 대한 도전과 아울러 노 후보는 한국정치를 어떻게 어디서부터 새롭게 이끌어 나갈 것인지를 보여주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정치는 축구보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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